[김경원 칼럼] '햇볕' 보다 '햇빛'이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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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은 새로 출발한 인터넷 신문 '업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자세와 체제엔 아무 변화가 없고, 오히려 민족공조를 내세우며 남남분열을 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옳은 말씀이다.

김대중(金大中)전 대통령 집권시기부터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몇 년 동안 북한을 도와주는 것을 대한민국의 중대한 의무로 간주하고 북한을 향해 현금에서 비료에 이르기까지 각종 '햇볕'을 보내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북한을 향해 따스한 햇볕을 보내면 이솝 우화에서처럼 북한 사람들은 무거운 외투를 스스로 벗어버릴 것으로 믿고 햇볕을 보낸 것이다.

*** 변화를 유인하는 두가지 방법

그런데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 몇 년 동안 남북 간에 오고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고 여러가지 형태의 접촉기회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북한이 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북한의 체제, 이념 또는 중요한 정책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북한은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교류와 접촉은 허락하지만 보통사람들의 자유왕래, 접촉 또는 의사소통은 철저히 봉쇄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도 철저히 통제된 틀 속에서만 가능하고 소위 관광도 모두 자유로운 왕래 또는 의사소통은 불가능한 가운데 허락되고 있다.

북한이 하는 일은 모두 전체주의적 계획에 따라 이뤄진다. 그 무엇 하나 자연발생적인 것은 없다. 운동경기에 나오는 응원단은 기가 막히게 훈련된 기계처럼 움직이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북한체제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인하려면 다음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햇볕과 북한의 변화를 연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북한이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적절한 수준의 햇볕을 제공하는 조건부 햇볕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방법은 우선 아무런 조건 없이 '햇볕'을 지원하고 북한이 스스로 변하기를 기다리는 방법이다. 바로 우리 정부가 택하고 있는 방법이다.

첫째 방법은 북한의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방법으로서 인간은 이기적이며 타산적이라는 가정을 받아들인다. 둘째 방법은 전자와는 대조적으로 인간성은 기본적으로 선량하다고 보고 상대방에게 선의와 친절만 베풀면 모든 갈등은 저절로 사라진다고 믿는다.

둘째의 조건 없는 햇볕정책의 문제점은 햇볕을 보냈는데도 상대방의 정책이나 자세에 아무런 변화의 조짐도 보이지 않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만일 여기에서 햇볕 보내기를 중단한다면 그것은 무조건적 햇볕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그와 반대로 변화가 없는데도 햇볕을 계속 보낸다면 북한에 있을 수 있는 변화를 가로막는 결과만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런 경우 햇볕정책은 북한이 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꼴이 되고 북한의 가능한 변화에 역기능적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이 변하기를 원한다면 따뜻한 열을 전달하는 '햇볕(sunshine)'을 보내는 일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 아니라 어두운 곳을 환하게 비춰주는 '햇빛(sunlight)'을 보내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 北체제 도와주는 역기능 경계를

북한 통치자들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체제를 유지해 왔다. 그리고 북한사회에 햇빛이 들어오는 것도 막으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햇볕'의 도움 없이는 현상도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다. 그리고 다행히도 햇빛은 햇볕과 같은 곳 즉 태양에서 나온다.

앞으로 우리가 보내는 햇볕은 햇빛을 보내기 위한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아무리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라 할지라도 햇빛이 환하게 비치는 조건 하에서는 더 이상 암흑사회를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한을 향해 햇빛을 보내야 하는 근본 이유다.
김경원 사회과학원장.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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