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의 귀재’로 불렸던 권성문 KTB투자증권 회장이 19년 동안 경영했던 회사를 떠나게 됐다. 이병철 KTB투자증권 부회장은 2일 권 회장이 보유한 이 회사 주식 중 1324만4956주가 주당 5000원에 자신에게 팔린다고 공시했다. 현재 주식 가치(2일 종가 기준 주당 3625원)와 견줘 37.9%의 웃돈이 붙은 값이다. 주식 매매 대금은 총 662억2478만원이다.
‘권 회장 1324만 주 넘기기로’ 공시 #권 회장, 1999년 기술금융 인수 #자본금 3500억원대 회사로 키워 #영입된 이병철 부회장, 경영권 도전 #최대 지분 확보하며 내분 일단락 #작년 ‘권 회장 발길질’ 추문 일기도 #권 회장 측 임원 퇴진 계약조건 이견 #양측 합의 불발 땐 다툼 재연될 수도
계약이 예정대로 이행되면 이 부회장의 지분율은 14.0%에서 32.76%로 높아지고, 권 회장의 보유 지분 비율은 24.28%에서 5.52%로 내려간다. 이 부회장이 권 회장을 제치고 이 회사 1대 주주로 올라서게 되는 상황이다. 또 계약 내용엔 권 회장과 권 회장 쪽 사외이사인 이훈규, 김용호 이사의 퇴진이 조건으로 붙어있다
권 회장으로서는 1999년 KTB의 오너이자 경영자가 된 이후 19년 만에 회사 지배권과 경영권을 내려놓게 됐다. 권 회장은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 벤처 투자의 귀재로 불렸다. 잡코리아와 옥션 주식 매매 차익으로 거액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물론 그 토대가 된 건 KTB였다. 그는 1996년 봉제업체인 군자산업을 사들여 미래와사람으로 사명을 바꾼 후 공격적으로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섰다. 현 KTB투자증권의 모태는 벤처투자 전문 공공기관이었던 한국종합기술금융(KTB)이다. 권 회장은 99년 이 회사의 정부 지분을 98억원에 사들인 뒤 회사를 투자 전문 회사인 KTB네트워크로 개편했다. 2008년 금융위로부터 증권업 신규 허가를 받으면서 KTB네크워크는 KTB투자증권으로 변신했다.
권 회장이 회사를 떠나게 된 건 그가 영입했던 이 부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에서 결국 패했기 때문이다. 양자 간 경영권 분쟁의 시발점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 회장은 “공동 경영에 나서겠다”며 당시 부동산 투자회사 다올인베스트먼트 사장이었던 이 부회장을 영입했다. 이 부회장은 다올신탁 사장, 하나금융지주 부동산그룹장 등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KTB투자증권 지분 5.81%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뒤 곧이어 KTB투자증권 부회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둘 사이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한 건 이 부회장이 2016년 하반기부터 공격적으로 KTB투자증권 주식을 매입하면서부터다. 그해 4월 5.81%로 출발한 이 부회장의 지분율은 주식 매입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4월 13.60%까지 높아졌다.
권 회장의 경영권은 그를 둘러싸고 각종 추문이 불거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권 회장이 직원을 발로 걷어차는 폐쇄회로TV(CCTV) 영상이 공개됐고, 회사 측이 폭행 사실을 무마하기 위해 직원에게 수천만 원의 합의금을 주며 외부 발설 금지 확약서를 요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설상가상으로 검찰이 권 회장의 배임·횡령 의혹과 관련해 그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금융사 지배구조법상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대주주 자격을 박탈당한다. 금융 당국은 대주주 자격이 없다고 결론 난 금융사 최대주주에게 주식 매각 명령도 내릴 수 있다. 배임·횡령 혐의로 권 회장이 처벌받으면 대주주 지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이 와중에도 차근차근 지분율을 높여나갔다.
권 회장이 반격에 나선 건 지난해 12월이다. 그는 긴급 이사회를 열어 경영권에 대한 의지를 주주들에게 확인시킨 뒤 곧바로 추가 지분 매입에 착수했다. 20.22%였던 지분율을 지난해 12월 한 달 새 24.28%까지 끌어올리며 이 부회장과의 지분 격차를 벌려 나갔다. 그러다가 이날 갑자기 권 회장 지분이 이 부회장에게 넘어간다는 내용의 공시가 나왔다.
권 회장은 애초에 이 부회장이 아닌 제3자와 주식 매매 계약을 맺으려 했다. 하지만 대주주인 이 부회장에게는 우선 매수 청구권 행사 권리가 있어 권 회장이 지분을 내놓을 경우 누구보다 먼저 지분을 인수할 수 있었다. 권 회장이 지난해 12월 제3자에게 지분을 매도할 뜻을 밝히자 이 부회장은 ‘그렇다면 우선 매수 청구권을 통해 내가 사겠다’고 결정했고 이에 따라 결국 지분을 인수하게 됐다.
양자 간 주식 매매가 끝나는 시점은 ‘계약 통지서 수령일로부터 2개월이 되는 날’ 또는 ‘금융위의 대주주 변경 승인 완료 등 거래에 필요한 정부 승인이 완료되는 날’ 가운데 이른 날짜다. 늦어도 두 달 안에는 계약이 완료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양측은 지분 이전 계약 세부 내용과 관련해 이견을 보인다. 회사 내 권 회장 쪽 관계자는 “애초 제3자에게 지분을 넘기려 할 때 임직원의 신분 보장, 권 회장 잔여 지분의 동등 조건 매입 등이 조건으로 걸려 있었는데 이 부회장 측이 이를 계약 내용에 담지 않았다. 이게 보장되지 않으면 지분을 넘길 수 없다”고 반발했다. 양측 이견이 봉합되지 않는다면 경영권 분쟁이 ‘제2 라운드’로 돌입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조현숙·이현 기자 newea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