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평창 꼼수’에 곤혹스런 트럼프의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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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새해 벽두부터 히든카드를 내놓았다.
‘통미봉남(通美封南)’이 아닌 ‘통남봉미(通南封美)’다.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을 거론하면서 화해 제스처를 남쪽으로 보냈다.

평화올림픽 분위기에 대북 강경책 쉽지 않아 #한국 정부는 남북회담 위해 광폭행보 #미국으로선 한ㆍ미 훈련 연기도 꺼림직 #"트럼프, 스포츠와 안보 분리 강조할 듯"

문재인 정부가 취임 이후 공들여온 남북 간 화해에 적극 호응하는 모습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겐 날선 목소리를 냈다. 마치 “모든 옵션이 책상 위에 있다”고 한 미국의 대북 경고를 패러디한 “핵 단추가 내 책상 위에 있다”고 대미 경고를 보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한반도 이슈와 관련된 주요국 지도자 중 김정은의 신년 메시지에 가장 곤혹스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일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트럼프의 첫 반응은 “지켜보겠다”는 것이었다.
김정은의 신년사는 이미 예상된 시나리오 중 하나였지만, 트럼프로선 대응 방안을 찾기 쉽지 않은 묘수이기도 하다. 남한의 올림픽 개최를 의미있게 언급하면서 평화 올림픽을 추구하는 듯한 김정은의 발언에 대한 성급한 비난과 압박은 되레 국제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맞대응 카드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트럼프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단순히 말한다면 그에겐 강력한 대북 압박을 지속하는 것과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유화책 등 크게 두 가지에서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입장에선 현재 어느 것도 택하기 쉽지 않다. 평창올림픽을 둘러싼 국제적 환경도 트럼프에게 녹록하지 않다.
트럼프가 김정은의 신년사가 북한의 기만전술이라며 더욱 강경한 대북정책을 취할 경우 국제적 공감을 얻지 못해 스텝이 꼬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유화책은 지금까지의 대북 강경 기조를 흐트릴 위험이 있다. 두 방안이 양립할 수도 있지만 강경책을 밀어부쳐온 최근 분위기에선 ‘일관성 없는 대북 정책’이란 비난을 면하기도 어렵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일 오전 9시 30분(평양시 기준 9시)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TV]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일 오전 9시 30분(평양시 기준 9시)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TV]

 사실 트럼프는 이미 원치않는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정부가 제안한 한ㆍ미 연합훈련 연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내키진 않지만 평화 올림픽이라는 국제사회의 명분을 거슬리기 쉽지 않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는 훈련 파트너로 북한 위협의 타깃인 한국 정부가 요청한 사안이기도 하다. 북한에게 물러서는 인상을 주는 선택을 원치 않는 트럼프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가 '북핵과 올림픽 분리'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올림픽 취지를 살리면서도 북핵에 대한 고삐는 계속 쥐고 나가는 전략이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김성한 교수는 "트럼프 정부는 스포츠와 안보를 별개의 문제로 접근한다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을 새 메시지는 대북 압박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다. 이를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군사력을 보여주는 장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창올림픽이 단기적인 이벤트라는 점은 트럼프에겐 다행이다. 일단 구체적인 반응보다는 원론적인 입장 표명과 함께 올림픽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평창올림픽의 틈새를 활용한 김정은의 꼼수는 장기적인 ‘전략(strategy)’가 아닌 단기적 ‘전술(tactic)’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 신년사와 관련, 미 국무부는 1일(현지시간) “북한에 대한 대응에 있어 결속하는 데 (미국은)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남북회담 성사 등을 위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의 반응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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