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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시스템, 조기출퇴근제로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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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회의 효율성은 시스템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어느 나라가 더 합리적으로 일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된다. 우리나라는 관공서나 대부분의 회사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형태로 일한다. 그러나 출퇴근을 1시간 정도 앞당겨 조기 출퇴근하면 돈 한푼 안 들이고 사회 전체적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생활의 질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현재의 '9~6시 근무 시스템'은 여유시간이 근무시간 전후로 분산돼 있어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일부 부지런한 사람은 아침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지만 대부분은 출근시간에 늦지 않아야 하므로 아침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퇴근시간 후에는 생리적으로 배가 고플 때가 돼 저녁 약속을 하거나 술 한잔을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9~6시 근무형태에서는 오전 근무시간은 3시간인 데 비해 오후 근무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을 빼더라도 5시간으로 오전보다 길다. 특히 겨울철에는 퇴근 시간이 밤이어서 저녁 약속을 많이 하게 된다. 이미 고임금 사회가 된 우리나라로서는 고부가가치 지식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이 평생교육 등을 통해 자기발전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또 현재의 근무형태에서는 문화산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이 발달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한국영화 관객이 늘어나는 이유는 영화의 품질 향상도 있으나 주 5일제로 영화를 볼 시간이 많아진 데 따른 것이라고 생각된다. 근무형태를 1시간 당겨 8~5시 시스템이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아침 시간은 현재보다 바빠질 것이다. 그러나 퇴근시간 이후가 길어져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외국어학원.컴퓨터학원.수영장.테니스장 등이 붐비거나 일찍 집에 돌아가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반대로 저녁 약속은 현재보다 줄어들 것이다. 여름철의 경우 오후 5시면 아직 대낮인데 저녁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기에는 너무 이르다. 1986~88년 서울올림픽을 대비해 서머타임을 실시한 적이 있다. 그때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일들이 벌어졌다. 서머타임 실시 이후 음식점과 술집의 매출이 줄었고 각종 학원은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대부분 선진국이 서머타임을 실시하고 있다. 적어도 1년의 50%를 조기 출퇴근하는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가운데 지리적으로 불필요한 아이슬란드를 제외하고 서머타임을 실시하지 않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선진국의 많은 공공기관.기업들은 평시에도 오전 8시에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여름철에는 우리나라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하는 셈이다.

조기 출퇴근을 실시할 경우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이 있다. 우선 출근시간이 1시간 앞당겨지므로 서울 같은 대도시에선 시간대별로 교통 분산책이 마련돼야 한다.

또 중요한 것은 퇴근시간이 지켜져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많은 기업이 퇴근시간을 지키는 경향이 있으므로 조기 출퇴근을 실시할 수 있는 여건은 꽤 성숙됐다고 본다. 사회에 가장 영향력이 큰 정부기관부터 조기 출퇴근 실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서머타임을 비롯한 조기 출퇴근 문제를 하루빨리 공론화해 국민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가능한 한 빨리 도입해야 한다.

최종찬 전 건교부 장관 고려대 경영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