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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즐거움|김미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어떤 집을 방문했을 때 내가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그 집의 책장이다.
어느 집이든 책장에는 어린이와 어른용 책이 나란히 뒤섞여 꽂혀있게 마련인데, 나는 보통 그 집 주부가 주방에서 차를 준비하는 동안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훑어보기를 좋아한다.
물론 그사이 읽고 싶은 책이라도 골랐을 때는 방문한 즐거움이 의미를 더하게 마련이다. 다른 집을 방문해서 그 집 책꽂이에 꽂힌 책 중 빌어온 것이 의외로 재미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에는 이웃집에서 연전에 작고한 박목월님의 문고집 한 권을 빌었다.
책을 빌어온 날부터 살림살이를 하는 틈틈이 열심히 읽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불 위에 밥을 올려놓고, 화장실에서, 귀가가 늦은 남편을 기다리면서 즐겁게 책을 읽고는 했다. 나의 독서 습관은 직장생활을 하던 처녀시절 우울할 때마다 회사 사무실 앞 서점을 들르곤 하던 때부터 시작되었다. 얼마간의 돈으로 갖고 싶은 책을 살수 있다는 것이 그 당시 상당한 즐거움이었다.
그 당시의 방황하던 내게는 책이 있어 큰 위안이 되었고, 책에서 읽은 『사람은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하고자 하는 방법에 따라 삶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인기 있던 여류수필가-전혜린-의 말은 왠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내 생활의 좌표가 되어주었다.
마치 우리의 신앙은 믿음보다 실천이 앞서야 하듯이 나의 독서도 얼마나 읽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느껴 생활에 옮겼느냐가 소중한 요즘은 자연 단지 읽는 즐거움에서 뿐 아니라 생활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며 책을 택한다. 항상 배우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자칫 단조롭기 쉬운 우리의 삶의 권태로움은 오히려 알찬 하루하루로 채워지리라 생각한다.
최근에 읽은 박목월님의 『자전적 명상록』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책이었다. 나도 이제부터는 욕심없는 생활이 주는 축복을 맘껏 누려야겠다.

<부산시 북구 화명동 주공아파트 106동 3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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