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부터 연출한 김민기씨 "안 하면 미쳐 버릴 것 같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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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소감은.

"2000년 1000회 기념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에 온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가 '2000회 공연을 바란다'라고 했을 때 난 '그건 저주다'라고 답했다. 지금도 주변에선 이렇게 계속 공연을 하는 건 '예술이 아니고 미련한 짓'이라고 말린다. 분명 돈 때문은 아닌 듯싶다. 이걸 안 하면 미쳐 버릴 것 같은 '쟁이'이기 때문이 아닐까."

-의미는.

"무엇보다 배우나 스태프에게 '안정'이란 걸 주었다는 데 있지 않을까. 멀쩡한 직장 때려치우고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한다는 건 이 바닥에서도 '미친 짓'으로 평가받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하철 1호선'은 상시 공연을 통해 일정한 수입과 일거리를 주었다. 후배에게 연극을 '가난한 예술'이 아닌 '일상'과 '미래'로 받아들이게 한 점이 중요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01년 독일 베를린 공연 갔을 때다. 난 원작을 난도질해 오히려 미안하다는 마음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똑 같은 종자를 가지고 아시아 대륙 끝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바꾸었구나. 하지만 다른 듯하면서도 결국은 같은 얘기를 하는구나'라며 높게 평가했다. 1998년 외환위기로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하면서도 공연을 이어가던 일 역시 잊을 수 없다."

-극의 배경이 계속 변화되다가 이젠 90년대 후반으로 고정돼 있는데.

"90년대는 군사 정권에서 민간 정권으로 이양되던 과도기였으며 정신적 공황기였다. 94년 초연 때만 해도 관객의 반응은 '내 얘기다'라며 뜨거웠는데 최근엔 옛날 이야기 듣는 것처럼 편안하게 본다. 그거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지하철 1호선은 90년대 풍속도로 남겨 두고 싶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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