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 盧정권, 未完의 집권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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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노무현 정부가 계속 고전(苦戰)이다. 말씀이 늘 완곡하던 김수환 추기경이 "…기대가 자꾸 무너진다"고 직설적인 비판을 했고 한편처럼 보이던 민주노총까지 盧대통령을 '선무당'이라고 공격했다.

지지율은 30%대, 경제 성적은 낙제점이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문제는 이런 어려운 상황을 맞고서도 새로운 처방이나 대안을 찾는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6개월의 경험에서 잘잘못의 원인과 교훈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 실력자·스타가 없는 참여정부

필자가 보기에 지난 반년 사이 드러난 盧정부의 큰 약점의 하나는 집권체제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각종 공직에 사람은 다 채웠지만 그 조직과 사람이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는 체제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만 해도 생산.영업.관리 등의 업무분담이 있고 분야별로 책임자가 있다. 하물며 정권이라면 당연히 정치.경제.행정.기획.조정 따위의 분야별로 책임을 지고 끌고 나가는 담당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 담당자들이 지도력.추진력을 발휘할 때 그들이 이른바 실력자.중진이란 소리도 듣게 되고 이름을 날리면 '스타'가 되기도 한다.

지금 盧정부에 그런 역할분담이 돼 있으며 담당자가 있는가. 행정담당은 고건(高建)총리라고 치자. 그럼 정치담당은 누구인가. 있긴 있는가. 경제 담당은 누구인가. 경제부총리가 그 역할을 한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기획.조정은 누가 하나. 386인가.

과거 정부에서는 경제가 잘못되면 경제부총리가 "각하. 죄송합니다"고 했다. 국회가 엉망이 되고 정국경색이 되면 여당 대표나 총무가 "면목 없습니다"고 했다. 지금 그런 상황이 되면 누가 죄송하다고 할까. 그 책임은 누가 질까. 실권이 없으면 일이 잘못돼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형식적으로만 담당자일 뿐 실제 일이 다른 데서 결정되면 담당자에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경제 낙제라고 아우성인데 힘없는 경제부총리가 책임져야 할까.

대형 국책사업들이 표류하고 있는데 그 책임을 해당 장관들에게 물어야 할까. 아니면 그 위의 총리나 청와대팀을 문책해야 할까. 지금 정치는 거의 부재(不在)상태인데 당정 분리나 미국형 대통령제라는 말로 방치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질까.

이처럼 盧정권에는 역할분담체제가 제대로 안 돼 있고 분야별 책임자가 없거나 있어도 이름뿐이다. 盧대통령은 분권(分權)을 말하면서도 분야별 담당자에게 권력을 나눠주진 않고 있다. 그러니까 실력자도, 스타도 없다.

高총리를 실력자라고 보는 사람도 없고, 경제부총리나 비서실장에게 힘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힘이 없으면 책임도 없다. 386 몇이 실력자 소리를 듣지만 그들은 커튼 뒤에서 공식적인 능력 검증을 받지도 않고 책임을 지는 입장도 아니다. 민주당 중진은 이미 '중진'이 아닌 지 오래다.

그러니까 오직 대통령뿐이다. 대통령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모든 책임도 대통령에게로 다 돌아간다. 화물연대가 운송거부를 해도, 한총련이 말썽을 부려도 화살이 바로 대통령에게 날아간다. 대통령을 위한 방파제도 없고 제대로 방패 노릇을 하는 사람도 없다. 대통령 자신이 선방(善防)하는 것도 아닌 터에 이래서야 국정이 되겠는가.

*** 역할분담제로 체제 정비를

이런 상태는 한마디로 '집권체제 미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6개월이 지나도록 정권 내부에서 왜 이런 문제점이 제기조차 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분야별로 권한을 주고, 책임을 지게 하는 역할분담 체제로 가야 한다.

궁극적인 책임은 모두 대통령에게 있지만 그 밑으로 차급(次級).차차급(次次級)의 역할과 권한.책임을 확실히 해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 밑에 중진.스타가 많이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정부 전체의 힘과 역량이 커진다. 최소한 총리.경제부총리.비서실장과 여당의 1, 2명 정도는 실력자가 돼야 한다. 대통령이 하기에 따라 실력자로 만들 수도 있고, 바지저고리로 만들 수도 있다. 밑에서 스타가 나오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 강한 부하를 거느리면 강한 대통령이 되니까. 집권체제의 정비가 시급한 과제다.

송진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