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화 속 단골 소재 ‘감방’ 이젠 안방 문턱 넘었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야구선수 김제혁(박해수 분)은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던 용의자를 과잉 폭행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용된다.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주인공이 탈옥하고 복수하는 과정을 담은 두 드라마. [사진 tvN]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야구선수 김제혁(박해수 분)은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던 용의자를 과잉 폭행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용된다.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주인공이 탈옥하고 복수하는 과정을 담은 두 드라마. [사진 tvN]

‘검사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된 주인공이 교도소 징벌방의 숨은 공간을 통해 탈옥한다. 이후 형사로 위장한 주인공은 자신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 드라마에 #교도소 체험 TV예능까지 등장 #탈옥담보다는 수형자 생활에 초점 #“범죄 미화,법의식 왜곡” 우려도

언뜻 영화 속 줄거리 같지만 아니다. 현재 방송 중인 SBS 드라마 ‘의문의 일승’의 이야기다.

예전 같으면 영화에나 등장했던 교도소 이야기가 안방 문턱을 넘고 있다. 올해 초 SBS 드라마 ‘피고인’을 시작으로 최근 교도소를 중심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이어지는 중이다. 특히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이어 성공시킨 신원호 PD의 드라마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지난 21일 10회 방송에서 시청률 7.9%를 기록하며 연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고 있다. tvN은 내년 1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형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의사가 돼 교도소 의무실로 지원하는 주인공 이야기인 드라마 ‘크로스’를 방송할 예정이다. YG엔터테인먼트는 최초로 교도소 내부를 경험하는 리얼리티 예능 ‘착하게 살자’를 제작하고 있다.

SBS ‘의문의 일승’. [사진 tvN, SBS]

SBS ‘의문의 일승’. [사진 tvN, SBS]

이는 유료채널의 약진으로 드라마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중에게 소비되지 않았던 참신한 소재를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로 풀이된다. SBS ‘피고인’처럼 주인공의 억울함과 탈옥(법적 용어로는 ‘도주’)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슬기로운 감빵생활’처럼 교도소 내 여러 인물의 스토리나 생활에 무게를 싣는 등 접근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야구선수였던 주인공이 교도소에 들어와 시작하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교통사고를 내 교도소에 온 인물을 통해 청년 세대의 아픔을 담는가 하면, 회사의 부당한 요구에 수긍해 대신 거짓자백을 한 과장을 등장시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 행태를 꼬집는다.

이같은 흐름은 미드(미국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다. 2005년 시작돼 ‘석호필’ 신드롬을 낳았던 ‘프리즌 브레이크’가 주인공의 탈옥 장면에 초점을 맞췄다면, 2013년 넷플릭스가 제작해 방송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마약 운반 혐의로 교도소에 수용된 주인공과 다른 수용자들의 삶을 조명하며 교도소 내 우정·사랑·갈등을 다뤘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시즌1은 프라임타임 에미상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코미디 부문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을 받았다.

SBS ‘피고인’. [사진 SBS]

SBS ‘피고인’. [사진 SBS]

20부작인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회당 제작비 6억원을 들여 세트를 짓고 교도소의 세밀한 부분까지 재현하고 있다. 구치소에 처음 들어가면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항문 검사나 교도소 내의 배식 장면, 교도소 노역장, 징벌방의 존재 등도 보여주고 있다. 신원호 PD는 ‘왜 하필 교도소냐’는 질문에 “금기의 공간이라 굉장히 신선할 것 같았다”며 “실제 지난 4월부터 감옥에 다녀온 분들을 인터뷰하며 취재했다”고 말했다. 내년 방송될 예능 ‘착하게 살자’도 구속부터 재판, 구치소 수용까지 이어지는 사법 시스템을 세밀하게 전해준다는 계획이다.

한 프리랜서 드라마 PD는 “교도소라는 공간은 화면상 답답할 수 있다는 단점만 극복하면 극단적인 공간이면서 코믹한 공간도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소재”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악인을 처단하기 위한 전초기지가 되면서도 브로맨스로 로맨스를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에 대한 우려도 있다. 윤석진 대중문화평론가(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일반인들은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공간인 교도소를 불러들이고 있다”며 “자칫 낯선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범죄자를 미화하는 등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 의식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