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자율과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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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학은 우리 사회를 선도해온 집단체이자 사회현상을 기강 잘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이런 기능은 4·19이후 계속 이어져 왔다.
어느 사회에서나 기강 수준 높은 공동체의 하나인 대학은 어느 집단 못지 않게 수준 높은 자치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대학들은 입학시험이나 교수 재임용, 총·학장 선임에서 자율과는 먼 거리에서 엄중한 정치적 통제를 받아왔다.
이것이 대학의 갈등과 모순을 창출하고 그 여파가 곧 사회로 미쳤다. 그 때문에 민정당정권은 6·29 자율조치의 일환으로 대학자율화를 내걸고 이를 점진적으로 추진해왔다.
노태우 대통령이 4일 종래의 임용방식으로 문교부장관이 제창한 4개 대학 학장임명 안을 반려하면서 해당대학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사람을 제청하라고 지시한 것은 대학자율화의 구체적인 진전이다.
당국은 작년 9월 학원자율화 추진계획을 만들어 87년 안에 교수평의회를 구성케 하고 88년부터는 총· 학장선임제, 교수재임용제 등을 개선키로 했다. 그러나 실제로 개선된 바는 거의 없다. 그 때문에 이번에도 문교부가 재래식 절차에 따라 학장들의 임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했다가 기각된 것이다.
정부가 먼저 할 일은 기존의 대학자율화방안을 추진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총·학장은 대학추천회의의 추천을 받은 사람 중에서 임용한다고 해놓고는 추천회의에 관한 법규를 만들지 않았다.
목포대에서 교수들이 교수평의회를 만들어 거기서 후임 학장후보를 선출하고 그를 임용하도록 정부에 상신함으로써 빚어진 정부와 교수사이의 마찰도 그런 법규미비에서 왔다.
대학자율화는 우리 민주화의 한 지표일 뿐 아니라 사회발전의 선결요건이기도 하다. 그것은 총·학장임용의 자율화와 교수재임용제 개선부터 시작돼야 한다.
당국은 대통령 지시대로 대학의 충·학장 후보 추천회의를 조속히 구성할 수 있게 하여 교수를 포함한 대학공동체의 의사를 반영하여 학교책임자를 뽑도록 해야 한다.
부작용이 많아 때때로 학내 분규를 일으켜온 교수재임용제도 조속히 폐기되거나 개선돼야 한다. 최근 수원대에서 교수자치기구의 핵심교수 3명이 재임용에서 제외된 것도 그런 차원에서 해결돼야 한다.
대학의 자율화가 폭넓게 추진되고 재임용제 자체의 폐기가 검토되고 있는 단계에서 대학의 자유를 속박키 위해 만들어진 유신의 잔재제도로 교수들의 재임용을 거부한 것은 시대조류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국·공립대의 자율화 조치는 사립대에도 적용돼야 한다. 지금까지 사립대에서도 일반 교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재단이사회가 총·학장을 임용하여 정부의 승인을 받아왔다. 정부는 사립대 책임자의 승인을 취소할 권한마저 가지고 있다.
사립대에도 총· 학장 추천회의가 마련되고 정부는 총·학장 임용에 관여치 않는 제도화조치가 시급하다.
이번 노 대통령의 조치로 대학자율화는 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육과 학문의 발전, 대학의 안정, 학생선도는 대학 자체의 힘으로 수행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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