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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017 한국영화 여성들, 안녕하십니까 ③ 기획 대담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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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

'2박3일'

[매거진M] 한국영화에 적신호가 켜졌다. 1000만 영화를 앞세워 세를 불리던 한국영화 관객 수가 2012년 이후 5년 만에 1억1000만 명 아래로 떨어졌을 뿐 아니라(1억73만 명), 외국영화 관객 수(1억362만 명)에 뒤진 건 6년 만이다(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12월 18일 기준). 스타 배우를 앞세운 ‘특별시민’ ‘브이아이피’ ‘침묵’(11월 2일 개봉, 정지우 감독) 등 기대작들이 예상을 밑도는 흥행 성적을 거뒀고, 블록버스터 ‘군함도’와 ‘브이아이피’는 한국영화의 역사의식과 젠더 감수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그뿐인가. 한국영화가 비슷비슷한 장르와 흥행 공식, 스타 캐스팅, 남성 중심의 이야기와 제작·배급 구조를 답습한다는 비판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상업영화, 독립영화에서 배워라

2017년, 한국영화는 어디에 와 있는가. 그 범위를 독립영화로 좁히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올해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독립 장·단편 중에는 다양한 여성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이 여럿이다. 여성 감독의 수도 늘었다. 한국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사이의 이 거리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한국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각각 올해의 독립 장·단편으로 꼽히는 ‘죄 많은 소녀’의 김의석(34) 감독과 ‘나만 없는 집’의 김현정(32) 감독, 배우로 활동하다 단편 ‘2박3일’을 연출한 조은지(36) 감독,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의 남동철(48) 프로그래머와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이하 AISFF)의 지세연(44) 프로그래머가 그 이야기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2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죄 많은 소녀' 김의석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김의석 감독 / 사용시 매거진 M팀에 문의바람

'나만 없는 집’ 김현정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 사용시 매거진 M팀에 문의바람
‘2박3일’ 조은지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세 작품 모두 감독의 자전적 경험, 살면서 느낀 감정이 소재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물론, 주변 인물 누구 하나 완벽한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만큼 감독 자신과 다른 입장에 놓인 인물 개개인의 심리를 인간적으로 고민한 결과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영화에 그릴 때, 다양한 입장을 두루 살피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국영화의 인권 감수성을 살피는 첫걸음이 아닐까.
남동철 “젠더 감수성이나 다양성에 대한 논의는 비단 영화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 전반에 그에 대한 고민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고민이 전혀 없던 시대를 지나 처음으로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 거다. 일례로 어떤 대학 영화과에서 졸업 작품을 매해 30여 편 정도 영화제에 출품한다고 하면, 몇 년 동안 꾸준히 젠더 감수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작품이 끼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그 학과의 교수가 그 문제를 감지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가르치는 곳에서부터 젠더 감수성과 다양성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세연 “영화계 인력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를 심사할 때 다양한 눈으로 작품을 살필 수 있는 심사위원을 섭외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성 소수자나 장애인이 그들의 입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이슈가 있을 테니까.”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담당 프로그래머 / 사진=라희찬(STUDIO 706)

지세연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프로그래머 / 사진=라희찬(STUDIO 706)

-내용적 측면만 아니라, 상업영화는 여성 감독은 물론, 여성이 촬영·조명 등 특정 분야에서 키 스태프가 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독립영화는 어떤가. 
김의석 “내가 몸담았던 영화의 연출부는 거의 여자였다. 제작부도 절반 정도는 여성이었다. 촬영이나 조명 같은 기술 분야의 여성 스태프도 늘고 있는 것 같다. ‘죄 많은 소녀’의 B 카메라를 잡았던 김보라 촬영감독도 여자다.”
김현정 “‘나만 없는 집’은 스태프의 절반 이상이 여자였다. 그에 반해 상업영화 쪽은 여성 스태프가 자리 잡기 훨씬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아는 여성 스크립터가 있는데, 정말 실력자다. 그분은 전문 스크립터가 되고 싶은데, 상업영화계에서 나이가 많다고 아예 뽑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시나리오작가나 감독으로 전향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남동철 “올해 터져 나온 논란들이 사실은 반갑다. 그런 토론이 한국영화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거니까.”
김의석 “대중문화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영화가 이런 논의의 활발한 장이 된 건, 아직은 영화가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증거일 수도 있다. 영화에 그보다 더 신성한 것을 바라는 것 아닐까.”
김현정 “난 다양한 여성 캐릭터만큼이나, 다양한 남성 캐릭터도 보고 싶다.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남성 캐릭터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또한, 독립영화에도 음지가 있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은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어렵고, 영화제에서 상영하지 못하면 그 영화는 영원히 장롱 속에 묻힌다. 그런 감독과 작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다.”
조은지 “기획·개발 단계에서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영화가 어떤 면에서 편협한 것이 아닌지 진심으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 고민을 철저히 거쳤다면, 상업 논리에 무조건 항복할 것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자기 생각을 관철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돈이 되는 영화가 아니라,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것, 그것이 영화인의 권리이자 책임이 아닐까.”
김의석 “맞다. 욕먹을 용기와 대답할 용기, 그 과정을 견딜 수 있는 인내를 길러야 할 것 같다. 이제 막 일어나고 있는 젠더 감수성과 다양성 논의에 대해, 관객도 영화인도 한국 사회도 이미 그 정답을 알고 있는 쪽은 없다. 끝없는 논의를 통해 그 정답을 찾아 나가는 수밖에.”

장성란·나원정·백종현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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