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12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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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무송이 현감의 말에 더 이상 반발할 수 없어 운가를 데리고 물러가려 하니 현감이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 아이는 우리가 조사할 게 있으니 여기 두고 가게나."

무송은 운가는 남겨두고 자기 혼자 현청을 나와 고소장을 뒷받침해줄 증인들을 또 찾아나섰다. 현청에 남게 된 운가는 골방으로 끌려가 아전들에게 둘러싸여 질문 공세를 받았다.

"고소장에 보면 서문대인이 무대를 때려죽였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때려죽이는 것을 네가 직접 보았느냐?"

"때려죽이는 것은 직접 보지 못했고요,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는 것은 보았어요."

"사람이 가슴을 주먹으로 몇 대 맞았다고 죽는다고 생각하느냐?"

"심한 경우에는 죽기도 하겠지요."

"서문대인이 달아나면서 때렸다고 하였는데 달아나는 자가 그렇게 사람을 죽일 정도로 심하게 때렸을까?"

"그럴 수도 있지요."

"너의 대답은 모두가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이구나. 그래 가지고는 어떤 증거도 확실하게 댈 수가 없다. 너, 무고죄라는 것을 아느냐?"

"무고죄요? 처음 듣는 죄인데요?"

"죄 없는 사람을 확실한 증거도 없이 고소하는 것을 무고죄라고 하는 거야. 그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나 해? 완전히 병신이 될 정도로 곤장을 맞고, 몇 년이고 감옥에도 갇혀 있어야 하는 거야."

"아이구, 저는 무고죄 안 할래요. 병든 아버지도 계신데 제가 없으면 금방 돌아가셔요."

"무고죄 안 하겠다고 안 하는 거 아니야. 너는 벌써 무고죄를 지었어."

"나으리,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증인 같은 것도 안 할래요."

"그럼 서문대인이 무대를 때렸다고 하는 이야기도 해서는 안 되는 거야. 네가 그러니까 무송 대장이 괜히 오해를 해서 저리 날뛰는 거잖아."

"네, 네, 알겠어요. 서문대인이 무대 아저씨를 때린 적이 없어요. 현감님에게도 그렇게 말할게요."

"때린 적이 없다고 말할 필요도 없고, 무조건 보지 않았다고 해야 하는 거야."

"네, 네, 그럴게요. 난 아무것도 보지 않았어요."

"넌 아무것도 보지 않은 거야?"

"네, 네. 이제 집에 가도 돼요?"

운가는 간신히 풀려나와 집으로 줄행랑을 쳤다.

그 사이에 아전 하나가 서문경을 찾아가 무송이 고소장을 제출했다는 사실을 은밀히 알려주었다. 서문경은 그 말을 듣자마자 심복인 내보와 내왕을 시켜 현감을 비롯한 관리들에게 은전 보퉁이를 갖다 주게 하였다.

다음날 무송이 현청으로 현감을 찾아가 고소장 수리 여부를 물으니 현감이 고소장을 무송에게 돌려주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무송, 자네는 청하현의 포도대장이 아닌가. 포도대장이라면 범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증거도 없이 사람들의 말만 듣고 어떻게 수사를 할 수 있겠는가. 자고로 성인들도 말씀하지 않았는가. '경전에 쓰인 사실들도 섣불리 믿을 수가 없거늘 하물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어찌 다 믿을 수 있을 것인가(經目之事 猶恐未眞, 背後之言 豈能全信)'하고 말일세. 그러니 사람들의 말만 믿고 가볍게 행동해서는 안 되네."

"현감님께서 이 사건을 다루어주시지 않으면 제가 나름대로 따로 다루어보겠습니다."

무송은 돌려받은 고소장을 한 손에 움켜쥐고 어깨숨을 쉬며 현청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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