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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변조 쉬운 장애인증명서, 별도 검증 안하는 점 파고들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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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호 03면

서류 위조 대입 수법 살펴보니

대학이 보관 중이던 위조 장애인증명서. 이름,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는 가렸다. 서울 강남구청 등은 ’등록된 장애인이 아니다“며 회신했다. 위조 서류는 모두 동일인의 손을 거쳤으며, 다른 사람의 진본 장애인증명서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오려 붙이고 홀로그램까지 넣어 인쇄한 것으로 보인다.

대학이 보관 중이던 위조 장애인증명서. 이름,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는 가렸다. 서울 강남구청 등은 ’등록된 장애인이 아니다“며 회신했다. 위조 서류는 모두 동일인의 손을 거쳤으며, 다른 사람의 진본 장애인증명서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오려 붙이고 홀로그램까지 넣어 인쇄한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으로 등록된 기록이 없다.” “이 같은 발급번호로 발급된 적이 없다.”

정원 제한 없는 정원 외 전형 #인서울 희망 학부모 주 관심 #시각장애 6급 지원 허용 대학 타깃 #경쟁률 높이는 ‘알박기’ 수법도 #브로커 잡으면 전모 드러날 듯

서울 강남구청·성북구청, 광명시청 등이 최근 고려대와 서울시립대가 보낸 장애인증명서 4장에 대해 이같이 회신했다. 서울시립대 입시 관계자는 “진본과 위조본이 구별이 안 될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장애인증명서는 요즘 전국 모든 읍·면·동 주민센터나 인터넷으로도 쉽게 발급된다. 인터넷의 경우 포털사이트에서 ‘민원24’나 ‘정부24’에 접속해 휴대전화 인증을 거쳐 무료로 뗄 수 있으며 장애인 본인만이 발급 신청을 할 수 있다. 교육부와 경찰청 특수수사과 조사 결과 장애인특별전형에서 발생한 입시 부정은 진본 장애인증명서 발급에서 시작됐다. 대치동 입시브로커 Y씨(30)가 진본 장애인증명서를 가져와 여기에 장애인전형 지원을 원하는 학생의 개인정보를 넣었다는 것이다. 장애인 등록은 복지법상의 장애 기준에 해당하는 후유장애가 남아 있으며, 의사의 진단 결과 호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만 가능하다. 장애인 등급 판정은 국민연금공단이, 장애인 등록은 읍·면·동 주민센터가 한다. 입시브로커는 장애인등록증 발급과 위·변조가 용이한 데다 이 서류를 대학이 별도로 검증하지 않는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장애인증명서를 위조하는 것 말고도 장애인이 등록증 서류를 분실했을 때 발급받을 수 있는 ‘발급신청확인원’ 등도 위조 또는 변조 대상의 서류다. 중앙SUNDAY의 취재에 응한 사교육업체 관계자는 “각 대학에 제출된 장애인증명서나 발급신청확인원에 대해 원본인지 조회만 해봐도 부정입학 여부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진본 증명서 가져와 가짜 정보 넣어

그렇다면 공문서 위조까지 벌일 수 있는 주범이 왜 하필이면 장애인특별전형을 노렸을까. 이 전형은 농어촌학생, 기초생활수급권자 및 차상위계층 학생, 특성화고 졸업자, 산업체 근무경력 재직자 등과 함께 사회배려 대상자를 상대로 하는 ‘기회균형선발’에 속한다. 대학이 정원 규모에 구애받지 않고 뽑을 수 있어 정원 외 특별전형이라고 부른다. 서울지역 대학의 정원 외 특별전형의 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 교육부가 운영하는 ‘대학알리미’ 사이트에서 서울 지역 14개 대학의 정원 외 입학생은 2014년 6338명(입학생 대비 12.7%)에서 2017년에는 7595명(14.9%)으로 1257명(19.8%) 증가했다. 이들 대학의 정원 외 특별전형은 ‘인(in)서울’을 희망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주된 관심 대상이어서 과거에도 입시부정의 타깃이 되곤 했다. 2012년 무려 476명의 부정입학자가 적발된 농어촌 특별전형에선 학생과 학부모의 주소지를 농어촌 지역의 고추밭이나 공항 활주로에 옮기고 지원한 사례도 드러났다. 특히 문제가 된 2013학년도 장애인특별전형의 경우 대학이 정시모집을 통해 총 1345명을 모집하려 했으나 실제 합격해 등록한 인원은 443명에 불과했다. 사교육업체 관계자는 “들어갈 문은 넓은데 들어갈 자격이 없어서 문제인 게 장애인특별전형”이라며 “입시브로커가 서류 위조까지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부정입학 혐의를 받고 있는 한 학생은 실제 시각장애인인데 그가 제출한 서류의 발급일자는 진본과 차이가 있는 것으로 교육부와 경찰 조사에서 나타났다. 발급일자가 조작된 서류를 일단 제출한 뒤 장애판정을 받은 것이다. 2013, 2014학년도 당시 시각장애 등급(1~6등급) 중 6급(나쁜 눈의 시력이 0.02 이하인 사람)까지 지원이 가능한 대학은 고려대·경희대·서울시립대와 교육대 등이다. 상당수 대학은 당시 중증에 해당하는 1~3급만 지원을 하도록 조건을 강화한 상태였다. 시각장애 6급 역시 병원 의사의 진단이 있어야 등급 판정을 받을 수 있으나 가짜 장애인이 판정을 따내는 데 가장 용이한 등급이기도 하다. 부정입학 혐의를 받고 있는 학생 4명이 모두 시각장애 6급이라는 서류를 제출했다는 점에서 이 등급의 지원을 허용한 대학이 부정입학의 목표물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합격자 10명 중 2명이 서류 위조

부정입학 혐의를 받고 있는 2014학년도 고려대의 기회균등 특별전형(특수교육 대상자)에서 경영학과는 3명 모집에 5명이 지원해 1.6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이들 전형에 지원한 학생은 1단계 전형에서 수능 성적(80%)과 학생부 성적(20%), 2단계 전형에서 1단계 성적(70%)과 면접 30%로 선발됐다. 2014학년도 서울시립대의 정원 외 기회균등전형은 학과 관계 없이 전체 10명만 선발하는데 경쟁률은 1.7대 1이었다. 수능 성적(70%)과 학생부 성적(30%)으로 선발됐다. 이들 전형의 경쟁률은 수시모집이나 일반전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쟁률 미달이 속출하는 지방 대학이나 간신히 모집인원을 채우는 다른 수도권 대학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서울시립대의 경우 2014학년도 정시 정원 외 기회균등전형 합격자 10명 중 2명이 위조 서류를 낸 셈이다.

입시브로커는 서류를 위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전도 벌인다. 예를 들어 특정대학의 사회배려자 대상자 전형의 모집인원이 1명이면 자격이 되지 않는 일반인이 원서를 내게 해 모집 시간 초기 지원 경쟁률을 높이는 수법(일명 알박기)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작 지원자격을 가진 장애인이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껴 여기에 원서를 내지 못한다.

사교육업체 관계자는 “이번에 일부 드러난 부정입학 배후의 입시 브로커 Y씨는 서울 강남의 모학원에 속한 컨설턴트라고 말하면서 돈을 받고 장애인 관련 서류를 위조하고, 알박기 등을 통해 합격시켜주는 일종의 비즈니스를 벌였다”고 말했다. 적발 때 입학취소는 물론 형사처벌 등 위험 부담이 큰 만큼 수천만원이 오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교육부가 조사 사실 공개해 수사 꼬여

대치동 입시업계에선 Y씨가 단독으로 벌인 게 아니라 현재 O사교육업체에서 상담 컨설팅을 하고 있는 C씨와도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지난 21일 각 대학을 상대로 장애인특별전형 전수 조사 사실을 밝히면서 경찰이 Y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렸다. 경찰이 Y씨를 잡아야 비리의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사교육업체 관계자는 “Y씨는 현재 입시철을 맞아 인터넷을 통해 정시 입시 상담을 하고 있다. 부정입학 건수는 더 많을 수 있다고 본다”며 “이번 입시부정은 장애 학생이 대학 갈 수 있는 길을 가로챘다는 점에서 정유라의 입학부정에 비해 더 악질적인 수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입시부정 사례에서 나타났듯 전형 과정에서 제출된 서류에 대해 검증 단계가 전무했다. 2012년 농어촌특별전형 비리 때에도 대학은 학생이 제출한 서류만 믿고 학생과 학부모가 제대로 농어촌지역에 거주했는지 따지지 않았다. 그러다 지방자치단체가 합동으로 조사하자 부적격 합격자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장애인특별전형에서도 대학이 받은 서류는 발급기관에 진본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하면 문제 발생의 소지를 막을 수 있다. 이 전형에 지원한 학생이 제출한 장애인증명서의 등록번호로 장애인인지 여부를 우선 확인해야 한다. 이어 발급번호와 발급기간을 보고 해당 학생이 전형 기간 이전에도 장애인이었으며, 다른 장애인의 서류를 조작한 것은 아닌지 따져야 한다. 올해 고3과 재수생 등이 응시하는 2018학년도 대입에서도 대학들이 수시모집의 장애인특별전형 합격자를 발표하고 있어 이제라도 서류 진위를 검증해야 한다.

이 밖에 정원 외 특별전형 제도에 대한 재검토도 뒤따라야 한다. 교육부는 지난달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제도를 보완 또는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질의를 받고 특별전형 제도를 축소하고 정원 내로 포함할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보고했다. 장애인특별전형은 정원 내 전형인 고른기회특별전형 등과 내용적으로 겹친다. 기회균등 차원에서 전형은 그대로 유지하되 정원 내외로 구분할 필요 없이 하나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정원 외 전형이 입시부정의 타깃이 되고 있는 만큼 이런 식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최은옥 교육부 대학정책관은 “전국 대학에 제출된 서류를 전수 조사해 부정과 비리를 밝혀낸 뒤 제도 보완까지 하겠다”고 말했다.

강홍준 사회선임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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