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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크레인 끌고와, 우리가 구하자"…3명 살린 父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서 3명을 구조한 사다리차 부자 이양섭(54)씨와 이기현(28)씨가 사다리차 앞에 서 있다. [사진 이양섭씨]

지난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서 3명을 구조한 사다리차 부자 이양섭(54)씨와 이기현(28)씨가 사다리차 앞에 서 있다. [사진 이양섭씨]

“뿌듯하다기보다는 죄송한 마음입니다. 조금만 더 일찍 갔더라면 하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8층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 사람들을 사다리차로 구조한 이기현(28)씨는 “더 많은 분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버지 이양섭(54)씨와 함께 남성 3명의 목숨을 구했다.

두 사람은 22일 오전 생존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들은 “덕분에 살았다”고 고마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들 이씨는 "수화기 너머에서 울음소리를 듣고는 가슴이 먹먹했다"고 했다.

21일의 상황은 끔찍했다. 오후 4시30분쯤 아들은 간판을 다는 작업을 마치고 귀가 중이었다. 사다리차의 한 종류인 '스카이'를 운전하고 있었다. 이때 아버지가 전화했다. 아버지는 친구가 사는 동네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근처에 있으면 당장 장비를 끌고 와라. 우리가 차만 잘 대면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는 전화를 끊자마자 스카이를 댈 공간을 준비했다. 현장의 경찰들과 협의해 통로를 확보했다. 10분 뒤 도착한 아들은 바로 구조 준비를 했다.

사다리차 부자 이양섭씨(54)씨와 이기현(28)씨는 ’더 많은 분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사진 이양섭씨 ]

사다리차 부자 이양섭씨(54)씨와 이기현(28)씨는 ’더 많은 분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사진 이양섭씨 ]

조종대는 베테랑인 아버지가 잡고, 아들은 밖에서 수신호를 보냈다. 15년째 크레인 조종을 한 아버지는 연기가 짙게 피어오르는 건물 쪽에 사다리차의 붐(사람이 탈 수 있는 공간)을 보냈다. 도착했을 때 8층 난간에 보였던 사람들이 불과 몇 분 사이에 연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어떻게든 붐을 난간에 붙여 주고 사람들을 타게 한 뒤에 내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건물 뒤쪽 8층 베란다에 붐을 바짝 댔지만 문제는 연기였다. 건물 외벽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흐르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1분 뒤쯤 아버지는 붐을 내렸다. ‘이쯤 되면 탔겠지'라는 직감을 믿었다고 했다. 연기 속에서 내려오는 붐을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4층쯤이 되자 연기 속에서 사람이 보였다. "사람이 3명 보이더라고요. 너무 다행이다 싶어 울컥했습니다.” 전날 상황을 설명하는 아들의 목소리는 다시 떨렸다.

3명을 구한 뒤 건물 정면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소방차와 굴절크레인 등이 대기 중이었다. 두 사람은 소방대원들을 믿고 현장을 떠났다.

아버지 이씨는 “당시에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는데 오늘 알고 보니 붐을 타고 내려온 세 사람 중 둘은 아는 사람이었다. 한 명은 이웃 업체 사장의 처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전에 같이 작업했던 사람이다”고 말했다.

아들 이씨는 2년 전까지 경기도 화성시의 크레인 업체 연구팀에서 설계 업무를 하다가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는 “1년 반 전에 결혼한 뒤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매사에 성실하다. 덕분에 사업도 잘되고 있다”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돈 보다 사람'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그렇게 살아 오신 분이라 퇴근하던 제게 ‘당장 와라. 우리가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움직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 부자는 유족들의 슬픔을 안타까워했다. “내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잊히지 않는다. 아빠와 함께 안에 갇힌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었다. 깊은 위로를 전하고 싶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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