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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017 한국영화 여성들, 안녕하십니까 ③ 기획 대담 (1)

중앙일보

입력

김의석 감독, 김현정 감독, 조은지 감독, 남동철 프로그래머, 지세연 프로그래머 / 사진=라희찬(STUDIO 706)

김의석 감독, 김현정 감독, 조은지 감독, 남동철 프로그래머, 지세연 프로그래머 / 사진=라희찬(STUDIO 706)

[매거진M] magazine M은 지난 3년 간 한국영화 속 여성의 지위와 존재감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2010년대에 들어 한국영화의 여성 배제는 눈에 띌 만큼 두드러졌고, 대형 투자·배급사가 만드는 영화일수록 내적 다양성은 더 담보되지 않았다. 특히 올해는 여성뿐만 아니라 중국 동포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는 영화들이 논란이 됐다. 세상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데 한국영화는 그에 조응하고 있는가.

상업영화, 독립영화에서 배워라

magazine M은 한국영화의 결이 더욱 풍부해지길 바라며 2017년 한국영화 속 여성들의 현황을 살펴봤다. PART 1에서는 관객 100만 명 이상 관람한 한국 상업영화 25편(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제외)이 양성을 균형 있게 다뤘는지, 여성 영화인의 참여도는 어땠는지 검토했다. PART 2에서는 여성을 구조적으로 억압하는 남성 중심의 영화 제작 환경을 타파하기 위한 나라 안팎의 움직임을 정리했다. PART 3에서는 감독, 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영화인 5인의 심층 대담을 통해 대안을 찾았다.

※1,2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브이아이피'

'브이아이피'

한국영화에 적신호가 켜졌다. 1000만 영화를 앞세워 세를 불리던 한국영화 관객 수가 2012년 이후 5년 만에 1억1000만 명 아래로 떨어졌을 뿐 아니라(1억73만 명), 외국영화 관객 수(1억362만 명)에 뒤진 건 6년 만이다(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12월 18일 기준). 스타 배우를 앞세운 ‘특별시민’ ‘브이아이피’ ‘침묵’(11월 2일 개봉, 정지우 감독) 등 기대작들이 예상을 밑도는 흥행 성적을 거뒀고, 블록버스터 ‘군함도’와 ‘브이아이피’는 한국영화의 역사의식과 젠더 감수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그뿐인가. 한국영화가 비슷비슷한 장르와 흥행 공식, 스타 캐스팅, 남성 중심의 이야기와 제작·배급 구조를 답습한다는 비판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2017년, 한국영화는 어디에 와 있는가. 그 범위를 독립영화로 좁히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올해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독립 장·단편 중에는 다양한 여성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이 여럿이다. 여성 감독의 수도 늘었다. 한국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사이의 이 거리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한국영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각각 올해의 독립 장·단편으로 꼽히는 ‘죄 많은 소녀’의 김의석(34) 감독과 ‘나만 없는 집’의 김현정(32) 감독, 배우로 활동하다 단편 ‘2박3일’을 연출한 조은지(36) 감독,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의 남동철(48) 프로그래머와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이하 AISFF)의 지세연(44) 프로그래머가 그 이야기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한국 상업영화에 단단히 실망한 한 해였다.

남동철 프로그래머(이하 남동철) “한국 상업영화 시장은 그 해 1000만 영화가 몇 편 나오느냐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올해는 ‘택시운전사’ 한 편뿐이다. 또 올해는 ‘택시운전사’ ‘더 킹’ ‘특별시민’ ‘대립군’(5월 31일 개봉, 정윤철 감독) ‘강철비’ ‘1987’(12월 27일 개봉, 장준환 감독) 등 남성 중심의, 정치색 강한 영화가 많이 나왔다. ‘프리즌’과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5월 17일 개봉, 변성현 감독)은 교도소를 배경으로 조폭과 형사의 관계를 그린다는 점이 같고, 케이퍼무비 ‘꾼’은, 지난해 말 개봉한 ‘마스터’(조의석 감독)와 소재가 비슷하다.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비슷한 장르와 코드의 작품이 줄줄이 나오는 거다.”
지세연 프로그래머(이하 지세연)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부터 올해 탄핵, 장미 대선으로 이어지는 현실이 워낙 역동적이지 않았나. 현실이 영화보다 훨씬 극적인 한 해였다.”
김의석 감독(이하 김의석) “소재나 장르뿐 아니라, 촬영이나 조명 같은 시각적 요소, 형식까지 ‘이렇게 해야 더 많은 관객이 좋아한다’는 규칙이 한국 상업영화에 존재하는 것 같다. 그 진위를 판가름할 수 없는 유령 같은 규칙이랄까. 이를 테면, 권선징악의 해피엔드로 끝나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
김현정 감독(이하 김현정) “어떤 감정을 관객에게 강요하는 듯한 연출도 공식이라면 공식이다. 감독으로서 학습의 차원에서 웬만하면 한국영화를 더 많이 보려고 하는데, 언제부턴가 대체로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몇 달 전부터 한국 상업영화를 보자는 생각을 놨다.”
조은지 감독(이하 조은지)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배우나 감독이기 이전에 한 명의 관객으로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거 정말 보고 싶다!’고 느끼기보다, ‘이 중에 도대체 뭘 봐야 하지?’ 고민할 때가 많다. 의외의 뭔가를 던지는 작품이 별로 없다. 같은 배우를 계속 캐스팅하거나, 여성을 남성의 보조로만 그리는 식의 캐스팅도 빈번하다. 배우로서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남동철 “어떤 영화가 흥행하면, 그 코드를 반복하는 영화가 줄줄이 나오는 건 늘 있던 일이다. 그 흐름 속에서, 관객이 그에 싫증을 느끼면 자연히 다른 영화들이 새로운 유행을 이끌었다. 문제는, 지금의 극장 시스템이 몇몇 영화에만 스크린을 왕창 열어 주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 구조를 넘어 예외적이고 새로운 영화가 관객의 호응을 얻을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지금처럼 경직된 극장 시스템을 타개하지 않는다면, 한국 상업영화는 관객의 요구에 한참 뒤처질 것이다.”

-획일화된 한국 상업영화가 외면한 장르, 예를 들어 공포와 멜로는 각각 할리우드 저예산 공포영화와, 일본영화가 그 수요를 맞추며, 나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남동철 “그 시장을 보고 한국 공포·멜로영화를 만들고자 해도, 몰아주기 식의 극장 독과점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200만~300만 명 시장을 보고 중·저예산 영화를 만들어도, 결국 1000만 영화를 노리는 대작들과 스크린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 극장이 1000만 기대작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상황에서,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해 흥행에 실패하는 부담을 떠안느니, 훨씬 적은 돈으로 외국영화를 수입하는 게 안전한 거다.”

M244_2017 한국영화 여성들_이월

M244_2017 한국영화 여성들_소공녀
M244_2017 한국영화 여성들_죄 많은 소녀 김의석 감독
M244_2017 한국영화 여성들_히치하이크

-한국 상업영화에서 느낀, 다양성과 색다름에 대한 갈증을 독립영화에서 채울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한 장·단편 중 여성 감독의 작품이 눈에 띄게 늘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도 많았다.

남동철 “올해 BIFF 와이드 앵글-한국단편경쟁 부문에서 상영한 15편 중 여성 감독의 영화가 11편이다. 상업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신선한 시선의 작품을 고르다 보면, 결과적으로 상영작에 여성 감독의 작품이 여럿 포함되는 것 같다.”
지세연 “AISFF도 마찬가지다. 올해 국내경쟁 부문 상영작 13편 중 8편이 여성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 중 대부분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남성 감독의 작품 중에도 중년 여성, 독거 노년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꽤 있다. 이는 올해만이 아니라 2~3년 전부터 이어지는 추세다.”
남동철 “올해 BIFF에서 상영해 주목받은 독립 장편 ‘이월’ ‘소공녀’ ‘죄 많은 소녀’ ‘히치하이크’ 역시 여성 캐릭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여성들은 남성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기존의 남성 중심적 이야기에서 인물의 성별만 여성으로 바꾼 게 아니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여성이 여성으로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이야기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장성란·나원정·백종현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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