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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돈 받은 판사는 일부 유죄, 돈 준 정운호는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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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준 정운호(52)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와 돈을 받은 '레인지로버 판사' 김수천(58)의 희비가 엇갈렸다. 정 전 대표 등에게서 100억원 대의 부당한 수임료를 챙긴 '수임료의 여왕' 최유정(47) 변호사는 책임을 조금 덜었다.

김수천 전 판사, 뇌물 일부 "유죄" #정운호 뇌물공여는 무죄 확정 #최유정 변호사, "조세포탈 일부는 무죄" #브로커 이동찬 징역 8년 형 확정

대법원은 22일 지난해 각각 변호사법 위반 혐의와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최유정(47) 변호사와 김수천 전 부장판사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 전 판사에 대한 뇌물공여 및 130억원 대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 전 대표에 대해선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고, 최 변호사와 함께 활동했던 법조 브로커 이동찬(45)씨에게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징역 8년 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 변호사에 관한 파기환송의 취지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는 전부 인정되지만 조세 포탈 부분 일부는 무죄라는 것이고 김 전 부장판사의 경우 원심이 전부 무죄로 판결한 뇌물 혐의 중 일부는 유죄로 봐야 한다는 차원이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
김수천 전 부장판사

'제 식구 봐주기' 비판 일부는 수렴 

검찰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정 전 대표가 김 전 부장판사에 청탁한 것은 두 가지였다. 자신이 수사를 의뢰해 김 전 부장판사가 직접 재판을 맡게 된 가짜 수딩젤 제조ㆍ유통 업자들을 엄벌해달라는 것과 자신이 상습 도박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될 재판부에 선처를 부탁해달라는 것이었다. 김 전 부장판사는 그 대가로 5000만원 상당의 레인지로버 차량과 현금 1억1500만원을 받고 차량의 취·등록세 등 수백만원의 세금까지 대납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돈을 두 가지 청탁 모두의 대가로 보아 ‘선처 부탁’ 부분에는 알선수재 혐의를 ‘엄벌 요청’ 부분에는 뇌물 혐의를 적용했다.

1심 재판부는 이 혐의를 전부 유죄로 보아 징역 7년 형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알선수재 혐의만을 유죄라고 판단해 징역 5년으로 감형했다. 금품 수수 시점이 수딩젤 사건 피고인들이 기소도 되기 전이어서 금품수수와 김 전 부장판사의 직무인 '수딩젤 재판'과의 관련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항소심의 판단은 '제 식구 봐주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원심의 판단을 일부 교정하는 데 그쳤다. 2015년 10월에 서울 강남의 한 스시집에서 받은 현금 1000만원에 한해서다. 이 1000만원의 성격은 앞서 받은 차량이나 1억여원과는 달리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이 돈을 받은 시기가 김 전 부장판사가 가짜 수딩젤 업자 일부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마친 직후였다는 점에 무게를 뒀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판사는 항소심 재판 전 이미 친분이 있는 정운호로부터 엄벌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고 피해자측인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도 했다”며 “금품 수수 당시 자신의 직무의 대가라는 점을 미필적이나마 인식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제의 1000만원을 둘러싸고 정 전 대표와 김 전 부장판사의 희비는 엇갈렸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은 김 전 부장판사에게 금품을 건넨 정 전 대표의 뇌물공여 혐의 전체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한 원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뇌물 공여자와 수수자가 재판부를 달리해 재판을 받게 되는 경우 한쪽만 처벌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며 "법관에게는 일반인 보다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는 점을 감안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정 전 대표가 자신이 대표로 있던 3개의 회사에서 130억원대의 배임·횡령을 저질렀다는 혐의는 그대로 유죄로 확정됐다.

최유정 조세포탈 일부 혐의는 "무죄" 

최 변호사는 정운호(52)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등에게서 판ㆍ검사와의 교제비 명목 등으로 100억원 대의 부당한 수임료를 받아 챙긴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김 전 부장판사는 정 전 대표에게 자신이 맡은 가짜 수딩젤 사건 처리에 관한 청탁과 함께 레인지로버 차량 등 억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최 변호사에게 적용된 구체적인 혐의는 판ㆍ검사 교제비 명목으로 유사수신업체인 이숨투자자문 송창수(41) 전 대표로부터 50억원, 정 전 대표에게 50억원의 수임료를 받아 챙겼다는 것(변호사법 위반)과 이 과정에서 일부 수임료에 대한 신고를 누락해 세금을 포탈했다는(조세범 처벌법 위반) 내용이었다.

조세 포탈과 관련해 검찰은 최 변호사가 송창수에게 받은 50억원과 정 전 대표에게 받은 20억원(50억원 중 30억원은 반환) 등에 대한 신고를 모두 누락해 부가가치세와 종합소득세 6억6000여 만원을 포탈했다고 봤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정 전 대표에게 받은 20억원에 대해선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부가세 포탈이 없다”는 최 변호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 부분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문제의 출발점이 된 네이처리퍼블릭 수딩젤 상품 [중앙 포토]

문제의 출발점이 된 네이처리퍼블릭 수딩젤 상품 [중앙 포토]

이날 대법원 선고 결과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최 변호사의 형량은 약간 줄고, 김 전 부장판사의 형량은 다소 늘어날 전망이다. 법조 게이트 관련자 중 형이 확정된 사람은 징역 2년이 선고된 홍만표 변호사와 그와 함께 활동했던 브로커 이민희씨(징역 4년), 징역 8년 형을 받은 이동찬씨, 정 전 대표로부터 2억원 대 뇌물을 받아 징역 7년 형을 받은 검찰수사관 김모(51)씨, 이민희씨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로 징역 2년 형을 받은 검찰수사관 A씨 등이다.

검찰의 수사로 100억원대 배임ㆍ횡령 혐의가 추가된 정 전 대표는 이날 오후 선고를 앞두고 있다. 정 전 대표에게 1억원 대 뇌물을 받은 박모 전 검사는 기소됐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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