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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월세·취업 걱정에 헉헉…20대 우울증 증가율 최고

중앙일보

입력

20대는 대학, 군대, 직장 등 생활에 변화가 잦은 시기라 적응에 실패하면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 수 있다. [중앙포토]

20대는 대학, 군대, 직장 등 생활에 변화가 잦은 시기라 적응에 실패하면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 수 있다. [중앙포토]

대학생 이모(26)씨는 지난해부터 낮밤이 바뀐 생활을 한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성적·취업·월세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걱정을 잊기 위해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다 새벽이 돼서야 잠든다. 낮밤이 바뀌면서 일상생활이 망가졌다. 수업을 듣거나 공부할 때 집중력이 떨어져 좀처럼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주말 아르바이트는 체력이 안 돼 그만뒀다. 짜증이 부쩍 늘어 친구들과도 사이가 멀어졌다. 이씨는 "집에 혼자 있을 때면 문득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이씨는 이런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병원을 찾았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20대 우울증 환자 4년 새 22% 증가 #청년실업률 최고조에 달한 팍팍한 삶 탓 #감정 기복 심하고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이런 증세 우울증 의심해봐야 #오래 지속되기 전 반드시 전문의 찾아야 #

 우울증에 시달리는 20대가 늘고 있다. 최근 우울증을 앓다 목숨을 끊은 가수 김종현씨도 20대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10~50대 중 20대 우울증 환자가 가장 많이 늘고 있다. 20대는 2012년 5만2793명에서 지난해 6만4497명으로 22.2% 늘었다. 같은 기간 10대는 14.5%, 40대는 0.4%, 50대는 1.2% 줄었다. 30대는 약간(1.6%) 늘었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대는 대학·군대·직장 등 생활에 변화가 많은 시기다. 잘 적응하지 못하면 자책감·괴로움이 밀려올 수 있다"며 "기분이 우울했다 갑자기 들뜨는 양극성 우울증이 20대에 많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20대에 생긴 우울증은 기분이 좋았다가 한순간에 확 나빠지는 감정 기복이 심한 게 특징이다. [중앙포토]

20대에 생긴 우울증은 기분이 좋았다가 한순간에 확 나빠지는 감정 기복이 심한 게 특징이다. [중앙포토]

 우울증을 앓는 20대는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다. 우울증이 있을 때 슬픈 감정만 느낀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기분이 우울했다가 한순간에 들뜨듯 좋아진다. 짜증이 많아져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불면증이 심하고 집중력도 많이 흐트러진다. 이런 증상을 방치하면 뇌 기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감정을 조절하는 세로토닌·도파민 같은 신경전달 물질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노력만으로 우울증을 극복하기 힘들어진다. 김현정(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국자살예방협회 홍보·대외협력위원장은 "신경전달 물질의 균형이 깨지면 의욕과 의지가 점점 감소한다"며 "상담·약·생활습관 개선 등 다각도로 치료해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직장인 전모(24·여)씨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2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증상이 서서히 시작됐다. 처음에는 우울증인 줄 전혀 몰랐다. 전씨는 항상 몸이 무겁고 잠을 자도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집에서는 누워 있으려고만 했다. 직장에서는 컴퓨터 작업 중에 갑자기 멍해지거나 졸기 일쑤였다. 회사일이 힘들어서 그려러니 했다. 하지만 증상이 조금씩 심해졌다. 집중력·기억력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져 직장에서 실수가 잦았다. 상사에게 수시로 혼나곤 했다. 전씨는 친구의 권유로 의사와 상담한 후 우울증이란 사실을 알았다. 의사는 "감정을 억누르기만 한 게 우울증의 주원인"이라고 했다.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자는 일상을 유지하는 게 좋다. 생활 리듬이 깨지면 호르몬에 불균형이 생겨 감정 조절이 힘들다. [중앙포토]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자는 일상을 유지하는 게 좋다. 생활 리듬이 깨지면 호르몬에 불균형이 생겨 감정 조절이 힘들다. [중앙포토]

 대학생 이씨, 직장인 전씨의 예에서 보듯 우울증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증세가 우울증이라는 걸 인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는 사이에 증세가 서서히 악화된다. 그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특징적인 징후가 있다. 감정이 격해지기보다 누그러진다. 주변 자극에도 잘 반응하지 않고 표정이 없어진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딴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울증을 예방·극복하려면 감정 표현에 익숙해져야 한다. 감정을 참으면 한꺼번에 폭발해 우울증으로 나타난다. 친구나 가족에게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면 감정을 조절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생활 리듬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자는 일상을 유지하는 게 좋다. 생활 리듬이 깨지면 호르몬 분비에 불균형이 와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 20대 우울증 환자는 남의 시선과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창피를 당하거나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 자책하기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불면 증세가 나아지지 않으면 빨리 병원을 찾아 상담받을 필요가 있다. 전홍진 교수는 "수면제를 임의대로 먹거나 남용하면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예민해져 병을 악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우울증은 자살의 가장 큰 위험요인이다. 대한의사협회지에 실린 논문(2011)에 따르면 자살 시도를 한 번 한 사람은 하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을 경험할 확률이 6.5배나 됐다. 자살은 20대 사망 원인 1위다. 통계청의 사망 원인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률(인구 10만 명당)은 25.6명으로 전년(26.5명) 대비 3.4% 줄었다. 대부분의 연령층에서 자살률이 줄었지만 20대(16.4명)는 예외였다. 특히 20대 여성은 2015년 12.0명에서 지난해 12.5명으로 늘었다. 김현정(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국자살예방협회 홍보·대외협력위원장은 "우울증이 만성화하면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울증 증상이 의심되면 전문가 상담을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사람은 주변의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나 자살할 거다' '유서를 써놨다' 얘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때는 무심코 넘겨선 안 된다. 전문가에게 즉각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김현정 위원장은 "'의지를 갖고 극복해라' '힘내라'는 막연한 말은 도움이 안 된다"며 "전문가를 만나러 갈 때는 동행해주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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