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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트럼프 신냉전 선포, 한국엔 무거운 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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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김영희 칼럼니스트·대기자

김영희 칼럼니스트·대기자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어긋나는 세계를 만들려고 한다.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밀어내려고 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가안보전략(NSS) 발표가 18일로 예고됐을 때만 해도 우리가 주목한 것은 북한에 대해 얼마나 호전적인 내용이 들어갈까였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지침이 될 NSS는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신냉전의 선전포고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트럼프는 NSS를 발표하는 연설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새로운 경쟁의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강력한 군사, 경제, 정치적 항쟁이 세계를 무대로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는 정치학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말한 한반도를 뛰어넘는 “거대한 체스판”을 벌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트럼프 NSS, 중·러에 신냉전 선포 #한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참가와 #대중국 MD에 참여하느냐가 숙제 #트럼프의 미국 이익 방어 전략에 #얼마나 많은 나라 호응할지 의문

북한 핵 문제를 긴급한 현안으로 안고 있는 한국에 미국 대 중국·러시아의 새로운 대결구도는 불길하기 짝이 없다. 핵·미사일을 포함한 북한 문제는 중국의 협력 없이, 중국의 의사에 반해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중국 시진핑 정부의 군사력 강화와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라는 실크로드 경제구상을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오바마 정부까지의 협력동반자 관계를 폐기하고 정면대결의 노선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NSS에 “우리는 인도가 주요 글로벌 파워, 우리의 강력한 전략적 방위 파트너로 등장한 것을 환영한다”는 구절이 들어간 이유다. 일대일로라는 원대한 구상으로 ‘중국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중국의 야망을 인도에서 한반도까지의 초승달 모양의 연대인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차단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드러난다.

북한에 관한 언급은 17번이나 되는 많은 횟수에 비해 우리에게 익숙한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수백만 미국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북핵을 반드시 해결하겠다, 북핵이라는 세계적인 위협에 세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북한 미사일을 발사 전에 파괴하는 중층적 미사일 방어망도 구축하겠다고 했다. 군사적인 옵션도 암시했다. 그러나 그렇게 자주 트윗으로 북핵의 군사적 해결도 불사하겠다던 트럼프의 모습은 중국·러시아와의 대결, 지하드 테러 그룹에 대한 전의(戰意), 이란의 핵 위협에 대한 경고의 뒤로 물러났다. 북핵에 대한 트럼프 트윗의 오랜 침묵도 우연이 아니라는 희망적인 의심이 든다. 그러나 김정은 못지않게 예측불가능한 트럼프가 내일이라도 ‘북한 완전파괴’ 수준의 자극적인 트윗을 날린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김영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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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이후의 미국의 대북 전략은 김정은의 신년사에 좌우될 것이다. 지난 5~9일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이 평양을 방문해 이수용 북한 외무상과 회담한 결과가 김정은 신년사에 반영된다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북한을 방문하는 것도 우리의 희망사항만은 아닐 것이다. 구테흐스 자신도 지난 14일 도쿄 프레스클럽 연설에서 김정은을 만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언제 어디든 필요하다면 갈 준비가 돼 있다”고 대답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조건 없는’ 북·미 대화론이 북한이 위협적인 행동을 중단해야 대화한다는 ‘조건 있는’ 대화로 일보 후퇴는 했지만 국무부 중심의 대화노선은 살아 있다. 틸러슨이 코너로 몰리는 배후에는 그를 밀어내고 유엔대사 니키 헤일리를 후임 국무장관으로 앉히려는 대북 강경파들의 물밑 활동이 있다. 헤일리는 지난 15일 틸러슨의 안보리 연설도 보이콧했다.

트럼프의 NSS는 한국에 두 가지 무거운 부담을 지웠다. 하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참가 여부다. 이미 청와대와 외교부가 이견을 드러냈다. 인도·태평양 전략 참가는 한·중 관계의 긴장을 가져온다. 진정 국면에 들어선 사드 보복이 재연될 수 있다. 둘은 트럼프가 강조한 중국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중층적 미사일방어망(MD) 구축이다. 한국은 중국과의 3불 합의의 하나로 미·일 MD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참가 없는 미·일의 MD는 미완성이고, 한국의 참가는 중국의 대규모 보복을 부른다. 한국은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고국 이타카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가 두 괴물 스킬라와 카립디스 사이를 뚫고 나가야 하는 것과 같은 어려운 처지가 됐다.

트럼프 정부의 공식적인 대외 전략 기둥은 힘을 통한 평화다. 그러나 NSS의 내용을 뜯어보면 그것은 힘을 통한 평화가 아니라 힘을 통한 미국의 이익 방어, 트럼프표 미국제일주의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얼마나 많은 나라가 그런 오만한 미국 중심주의 정책·전략에 호응할지 의문이다.

김영희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