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거리에 찬바람이 매섭다. 바람 사이로 노랫소리가 섞여 있다. 성탄 캐럴인 ‘오 홀리 나이트(O Holy Night)’가 들린다. 가게에서 울리는 녹음된 소리가 아니다. 소리를 따라간다.
한 남자가 명동 거리에서 노래를 부른다. 반주 기계에 맞춰 부르는 목소리가 간단치 않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간간이 멈춘다. 캐럴로 시작한 노래가 가곡, 팝송, 오페라를 넘나든다. 반주곡은 50여곡이 준비되어 있다. 거리 분위기에 따라 25~30곡을 선정해 부른다. 거리공연은 1시간 30분 정도 한다. 우천 시에는 기계 고장 우려로 안 한다. 곡이 끝나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손뼉을 친다. 몇몇은 모금함에 돈을 넣기도 한다.
노희섭(48), 그는 성악가다. 높은 바리톤 음색을 가진 그는 테너를 소화할 수 있는 테리톤 가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1998년 영남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이탈리아 씨에나에 있는 리날도프란치(Rinaldo Franci) 국립음악원을 2002년 8월 성악 부문 수석 졸업했다.
귀국 후 2003년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오페라단 총무 및 상임 단원이 되어 무대에 올랐다. 2006년 인씨엠(insiem)예술단 설립에 관여했고 현재 단장을 맡고 있다. 인씨엠은 이탈리아 고어로 ‘함께’라는 뜻이다. 인씨엠 예술단 활동을 하면서 2011년 서울시 오페라단을 퇴사했다.
예술단 단장을 맡고 클래식 음악 확산을 위해 공연을 적극적으로 했다. 그러나 수익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상황이 이어졌다. 후원을 받아 운영되는 클래식 공연이 아니라 많은 관객이 모여 즐기는 공연을 하고 싶었다. 이와 함께 수익도 나는 공연이 되길 원했다.
그는 클래식과 일반 대중 사이에 높은 벽이 있다고 느꼈다. 일부 계층만이 소화하는 음악이 아니라 대중음악처럼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반인이 클래식, 특히 성악을 접할 수 있게 하려고 거리로 나왔다. 클래식 성악을 값비싼 무대에서만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1000회를 목표로 2013년 7월 거리공연을 시작했다. 주변에서 목소리 망치는 일이라며 무모하다 했다. 클래식 성악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비난도 있었다.
그는 거리에서 부르다 보면 성악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20일 현재 431회째를 기록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 세월호 사고로 성악 버스킹을 중단하기도 했다. 영등포역, 삼청동, 인사동, 덕수궁 돌담길 등 다양한 곳에서 공연했다. 지금은 월·목요일 오후 1시 명동 우리은행 앞, 화·수요일 오후 5시 신촌 현대유플렉스 앞 광장, 일요일 오후 5시 이태원 해밀턴 호텔 뒤 공터로 장소를 정했다. 지금 추세면 2020년 10월이면 1000회 달성 예정이다.
초창기 영등포역 앞에서 공연할 때 한 노숙자가 공연을 끝까지 자리했다. 공연이 끝난 뒤 그는 박스를 주워 판 2000원을 모금함에 넣었다. 노 단장은 이 기억이 버스킹을 지금까지 계속한 또 다른 힘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대와 달리 직접 관객과 눈을 맞춰 노래하니 다양한 사람을 만난 것도 소득이라고 했다.
신촌에서 거리 공연한 날, 매서운 추위가 닥쳤다.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지나쳤다.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노래한다. 연인 사이인 김진희(35)·황상호(36) 씨가 찬바람을 맞으며 공연을 보았다. “성악을 잘 모르는 사람 귀에도 잘하는 노래라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 두 사람은 한동안 공연을 즐긴 뒤 자리를 떠났다.
호흡하는 순간 찬바람이 목을 넘어왔다. 목이 순간 잠긴다. 마이크를 피하면서 살짝 목을 다듬는다. 마이크 성능이 떨어져 입을 붙여야 제대로 소리가 전달된다. 지나는 사람들이 녹음된 소리에 맞춰 립싱크하는 것으로 아는 듯했다. 이번 곡은 크게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곡이다. 마이크 없이 부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종종걸음으로 지나간다. 날씨 탓이다. 관심이 적다. 버스킹을 처음 시작할 때 관심이 없으면 실망하고 위축되었다. 이제는 마음을 다잡는 시간으로 여긴다. 오늘은 거리공연이 아닌 노래 연습하는 날이다. 그럼 마음이 편하다. 은근히 올라오는 허탈감과 교만도 사라진다. 호응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는 거리에 노래를 뿌린다. 자신의 노래가 성악 애호가를 만드는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라면서. 사진·글 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