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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근로시간 단축하면 어떻게 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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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Q.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한다고 들었습니다. 배경이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그러면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임금도 줄어드나요?

휴일수당 할증률 놓고 의견 분분 #중기 “8시간 연장 근로 허용해야” #신세계 ‘주 35시간제’ 도입 실험 #단축근무 도입 벤처 “효율 높아져”

근로자 삶의 질 좋아지지만 중소기업 부담 커지죠" 

A.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줄어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부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게 골자입니다. 지난달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여야 3당 간사는 이 안에 합의했지만, 결국 무산됐습니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 등은 52시간 근로에는 찬성하지만, 휴일 근로수당을 평일 수당의 150%가 아닌 200%로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환노위는 휴일수당(50% 가산)과 연장수당(50%)을 동시 인정(200%, 중복할증)할 게 아니라 하나만 인정해 150%의 임금을 주자는 의견입니다.

그러니까 휴일수당을 얼마만큼으로 하느냐가 쟁점입니다. 월급이 줄어들 수도 있고, 오히려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죠.

일단 근로시간 단축 추진에 대한 배경을 살펴볼까요. 현행 법정 근로시간은 한주당 40시간입니다. 여기에 연장근로 12시간이 허용돼 총 52시간입니다. 그런데 근로시간에 대한 정부 행정해석엔 휴일근로 16시간(토·일 각 8시간)이 들어있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68시간까지 늘어납니다.

[그래픽=박춘환, 김회용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김회용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한국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과 비교해 깁니다. OECD 연평균 근로시간은 1770시간(2014년 기준)입니다. 한국은 그보다 350시간 많은 2124시간입니다. 멕시코에 이어 OECD에서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최근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추세인데요. 이를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는 입법 취지입니다.

여기에 휴일수당도 줄곧 문제가 됐습니다. 정부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논란의 불씨가 됐습니다. 현재 근로자가 휴일에 일할 경우 수당은 휴일근로 할증률 50%만 적용합니다. 하지만 노동계의 해석은 다릅니다. 휴일근로는 연장근로(50%)이면서 휴일근로(50%)이기 때문에 수당을 100% 할증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국회의 법 개정 작업은 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수당 할증률은 현행대로 50%로 책정했는데,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면 굳이 휴일에 일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 개정이 미뤄지면서 결국 대법원 판결로 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된 사건을 2008년 넘겨받았지만, 국가 경제에 미칠 충격을 우려해 판결을 미뤄왔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내년 1월 공개변론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판례를 봤을 때 대법원은 주당 최대 52시간, 휴일 할증 100%로 볼 공산이 크다는 게 노·사·정의 예측입니다. 판결이 나면 모든 사업장에 즉시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됩니다.

판결에 따른 할증률 100%를 적용하면 지금까지 할증률 50%를 적용해 수당을 받은 근로자는 나머지 50%에 대해 수당을 소급해 받을 수 있습니다. 기업은 근로기준법상 임금채권 유효기간인 3년 치의 휴일 근로수당을 계산해 한꺼번에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계는 큰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비용이 연 12조3000억원입니다. 이는 연장근로 시간이 주당 12시간으로 제한되고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될 경우 기존 근로자들의 임금 변화분인 1754억원과 인력 부족에 따른 인력 보충 비용 12조1000억원을 합한 금액입니다.

문제는 이 중 상당액(8조6000억원)이 중소기업 몫이라는 점입니다. 대기업은 그간의 진행 상황을 예측해 나름의 대책을 세워두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합니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영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까지 시행되면 수당 지급 부담에 생산성 하락도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중앙회 측은 “30인 미만인 영세 중소기업의 경우 주당 8시간의 특별 연장 근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정부가 추진 중인 근로시간 단축안이 통과되면 인력난을 겪고 있는 영세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부족 인력은 16만 명으로 전체 기업 부족분의 55%에 달합니다. 특히 도금·도장·열처리 등 뿌리산업과 지방사업장 등에서는 구인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어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근로시간이 줄면 임금도 줄어들게 됩니다. 특히 대기업 정규직 임금의 50%도 안 되는 중소기업 근로자의 호주머니는 더 쪼그라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신세계그룹은 내년 1월부터 근로시간을 5시간 단축한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다고 지난 8일 발표했습니다. 단, 임금을 줄이지 않기로 한 점이 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신세계의 발표는 대기업으로선 처음으로, 파격적인 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신세계는 우선 유통 채널의 영업시간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이마트 영업시간을 1시간 줄이고 백화점 등 다른 채널의 영업시간도 점진적으로 조정할 계획입니다. 기본 근무 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이지만 업무 특성에 따라 출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 도입합니다.

영업시간을 줄이고 임금은 그대로 가는 신세계 방식은 당장 수익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세계 측은 “줄어드는 영업시간만큼 효율성을 높이면 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재계는 신세계의 경우는 그간 논의해온 근로시간 단축 이슈와 ‘결이 다르다’는 시각입니다. 유통이 주력인 신세계그룹은 생산직 비중이 작아 유동적인 물량을 수주해 납기일을 맞추거나 정해진 시간 내에 할당된 생산량을 처리해야 하는 제조업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실제 생산라인을 보유한 신세계푸드 등은 이번 근로시간 단축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죠.

온라인 비즈니스 기반의 중소기업은 이미 주 35시간제를 도입한 곳이 여러 곳 있습니다. 숙박예약 사이트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위드이노베이션 등입니다. 이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은 뜨겁다고 합니다.

국내 공공기관 최초로 주 4일제를 도입한 경상북도 출연기관인 경북테크노파크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근무시간을 단축해도 매출은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일하는 시간이 짧아진 만큼 더 집중해서 업무에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휴일수당 등을 둘러싸고 아직 정부와 여야, 재계가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큰 흐름은 비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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