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수상한 뒷걸음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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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16강전> ●박정환 9단 ○자오천위 4단

7보(90~102)=바둑은 점점 폭풍의 소용돌이로 다가가고 있다. 흑이 91로 나오자 백은 재깍 수를 조이지 않고 92로 또다시 한걸음 물러섰다. 백이 자꾸만 수상하게 어슬렁어슬렁 뒷걸음질 치는 이유는 백 두 점(△)을 버림 돌로 활용해 하변 흑 대마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상대의 노림이 뻔하게 보일 때는 작전에 걸려들지 않도록 더욱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

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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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상대의 노림에 쉽게 말려들 박 9단이 아니다. 먼저 93으로 백의 품을 파고든 다음, 95로 한 칸 뛰었다. 굳이 93을 먼저 두는 이유는 탈출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백을 흠집 내기 위해서다. 이렇듯 고수의 바둑은 치열하게 상대를 괴롭히는 수로 점철돼 있다.

백도 고분고분하게 굴지는 않는다. 백 두 점을 버리면서도 최대한 상대가 받기 까다로운 쪽으로 바둑을 이끌고 있다. 먼저, 96으로 찌른 다음 98로 끊어 최대한 복잡하게 사석 작전을 썼다. 여기서 '참고도'처럼 손쉽게 두 점을 버리는 건 흑의 자세가 너무 좋기 때문. 지금 형세가 불리한 흑은 최대한 판을 비틀면서 끈질기게 버텨야 한다.

참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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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이 101로 두 점을 잡자 102가 떨어졌다. 드디어 백의 노림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제 백은 두 점을 버리면서까지 속내를 감추고 때를 기다려온 진짜 이유를 보여줄 차례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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