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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째 난방·온수 중단…경기 군포시 아파트에 무슨 일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3일 오전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한양수리아파트 804동의 한 가정집. 거실 바닥엔 이불과 보온매트 등이 빈틈없이 깔려있었지만, 발바닥을 통해 한기가 올라왔다. 한쪽에 설치된 라디에이터를 통해 온기가 퍼지는데도 온도계 속의 기온은 13~14도였다.
집주인 박모(42)씨는 "그나마 우리 집은 햇볕이 들어와서 따뜻한 편이다. 기온이 10도도 되지 않는 집도 많다"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서 8개월 된 아이를 제대로 씻기지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군포시 한양수리아파트 배관교체공사로 곤욕 #7월 시공사와 공용급수 급탕·난방배관공사 계약 #설계 등 기술적 문제 등으로 공사 늦어져 #11월 끝난다던 공사가 12월 중순에 끝나 #공사 기간 동안 난방·온수 중단 #주민들 전기난로와 두꺼운 외투로 버텨 #전기난로 등 사용 급증으로 정전도 #주민들 "하자 없도록 시에서 관리·감독 해달 #·"

4개월째 난방과 온수 공급이 중단된 경기도 군포의 한양수리아파트. 주민들은 추위로 낮에도 두꺼운 옷을 입고 이불 등을 덮고 생활한다. 최모란 기자

4개월째 난방과 온수 공급이 중단된 경기도 군포의 한양수리아파트. 주민들은 추위로 낮에도 두꺼운 옷을 입고 이불 등을 덮고 생활한다. 최모란 기자

이 집만이 아니라 한양수리아파트 1342가구의 주민 4000여명이 추위와 싸우고 있다. 지난 8월 시작된 단지 내 관 교체공사가 4개월째 이어지면서 난방과 온수 공급이 끊긴 탓이다.
1994년 입주가 시작된 이 아파트는 세월이 흐르면서 지난해 말부터 배관이 낡아 녹물이 섞인 수돗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 장기수선충당금과 군포시의 공동주택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아 지난 7월 28일 A업체와 계약을 맺고 8월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이후 아파트 단지의 난방과 온수공급이 중단됐다.

문제는 공사가 너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배관공사 작업의 경우 겨울이 오기 전에 완료하기 위해 보통 4∼5월 공사를 시작해 늦어도 10월 말에는 완료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한양수리아파트는 3개월이나 늦은 7월에 시공사와 계약해 8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군포시는 공사도 늦게 시작한 데다 입주자대표회의와 시공업체 간 협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공사가 늦어진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계약 후에도 의견 차이 등으로 시공업체는 40일 정도 공사를 못 했다고 한다.

4개월째 난방과 온수 공급이 중단된 경기도 군포의 한양수리아파트에 걸린 배관교체 공사를 알리는 현수막. 최모란 기자

4개월째 난방과 온수 공급이 중단된 경기도 군포의 한양수리아파트에 걸린 배관교체 공사를 알리는 현수막. 최모란 기자

4개월이 넘도록 공사가 이어지면서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여기에 지난달부터 갑작스러운 한파가 계속되면서 주민들은 온수 매트와 전기장판·난로 등 난방기구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서 한 가구당 11만원 정도를 들여 순간온수기도 임대·설치했다.

그렇다고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난방기구를 온종일 사용할 수도 없다. 이에 주민들은 실내에서도 두꺼운 점퍼를 입고 양말을 두 개씩 겹쳐 신으며 생활하고 있다. 낮에는 집 안보다 바깥이 더 따뜻해 일부러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822동에 사는 주민 최모(58·여)씨는 "모든 식구가 거실에서 잠을 자는 등 아낀다고 했는데도 이번 달 전기요금이 20만원이 넘게 나올 듯하다"며 "난방도 못 하고있는 데다 날씨까지 추워서 수도가 얼었는데도 개인 문제라며 직접 고치라고 했다"고 억울해했다.

지난 13일 군포 한양수리아파트의 한 가정의 난방 온도. 7.5도라고 찍혀있다. [사진 독자]

지난 13일 군포 한양수리아파트의 한 가정의 난방 온도. 7.5도라고 찍혀있다. [사진 독자]

가장 큰 문제는 갑자기 많은 가구에서 한꺼번에 전열 기구를 사용하면서 과부하가 걸려 단지 내 정전이 잇따른다는 것이다.
씻기 위해 순간온수기를 사용하려면 집 안에 있는 다른 전기용품의 플러그를 모두 빼야 할 정도다. 일부 동은 잦은 정전으로 차단기 등을 교체했지만, 정전이 잦다.

여기에 소방용 펌프 교체 공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어서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이 작동되지 않기 때문에 주민들은 화재라도 날까 봐 항상 조마조마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일부 주민은 인근 친척 집에 아이들을 보내거나 인근에 아파트를 임대해 월세살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807동에 산다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주민은 "주민들끼리 만나면 나누는 첫인사가 '어제는 괜찮았냐'이다 "추위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다 감기로 고생을 하는 데다 환자나 나이든 어르신들이 있는 집들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한다"고 말했다.

당초 입주자대표회의 등은 주민들에게 지난달 10일과 30일 난방과 온수 공급이 재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사 기간이 계속 늦어지자 주민들은 지난달 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군포시에 "공사가 빨리 마무리되고 부실공사가 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군포시도 지난달부터 시공업체와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들과 접촉해 "주민들의 불편을 신속하게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시공업체와 입주대표회의 등은 현재 일부 동에 난방과 온수를 공급하는 등 순차적으로 오는 18일까지는 공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양수리아파트 게시판에 붙어 있는 소방공사 안내문. 주민들은 추위로 전열기구 사용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소방공사까지 이뤄지면서 화재 등 사고가 날까봐 걱정했다. 최모란 기자.

한양수리아파트 게시판에 붙어 있는 소방공사 안내문. 주민들은 추위로 전열기구 사용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소방공사까지 이뤄지면서 화재 등 사고가 날까봐 걱정했다. 최모란 기자.

시공업체 관계자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미흡한 설계 도면을 제공하고 공사 장비 변경 발주 등 공사에 필요한 서류를 승인하지 않으면서 공사가 늦어졌다"며 "그나마 우리가 발주 등을 서둘러서 공사가 단축된 것"이라고 했다.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생각보다 공사가 복잡한 데다 소방공사까지 하면서 공사 기간이 오래 걸렸다. 18일이면 공사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상대책위원회는 공사가 끝난 뒤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15일로 끝나는 공사기한 마감일을 지키기 위해 서두르고 있어 부실공사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비상대책위 관계자는 "시의 보조금이 투입되는 사업이고 이런 문제가 다른 곳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며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개별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시에서 공사가 끝난 뒤에도 철저하게 관리·감독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군포=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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