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공공" 외칠 땐 언제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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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는 온 국민의 발이고 철도의 생명은 국민의 안전과 편익"이라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또 "장애인에 대한 할인혜택 철폐를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있고, 지난달 28일 파업 직전 기자회견 때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대표까지 참석시켰다.

물론 철도노조의 이 같은 주장은 다분히 대국민 홍보의 성격이 짙다. 철도공사가 진 막대한 빚을 국민 세금으로 해결해 달라고 하려면 '철도는 공공의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조가 입만 열면 '공공'을 외쳐댔으니 새봄 개학 첫날의 파업은 국민을 생각해 화끈하게 풀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2일 오전 5시30분까지 철야로 계속된 협상은 결국 결렬됐다.

협상에 참석했던 철도공사 관계자는 "노조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눈치를 보느라 운신의 폭이 제한된 것 같더라"면서 "우리 쪽에서 아무리 양보해도 파업 철회 여부는 민주노총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철도노조의 이번 파업이 민주노총의 봄철 총파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는 끊임없이 나왔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비정규직 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를 통과한 순간 파업 돌입은 기정 사실이 된 게 아니냐"고 말했다. 노사협상에 의해 파업을 하거나 말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조준호 위원장이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투쟁의 물꼬를 터 달라"고 요구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2일 아침, 출근길의 시민들과 등굣길의 학생들은 오지 않는 전철을 기다리며 추위 속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출근길에 만난 40대 회사원은 "철도노조가 공익과 공공성을 운운할 때는 신선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시민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공공성인데 불법 파업이 우릴 위한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철도공사와 노조 모두 이제는 더 이상 '공공'을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갑생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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