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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워킹맘 다이어리

'보육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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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 이노베이션랩 기자

박수련 이노베이션랩 기자

“넌 애 둘을 어떻게 유치원 보냈어? 집 근처 유치원 어디에도 우리 애 자리는 없대. 나 회사 그만둬야 하는 거니?”

친구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전날 유치원 입학관리시스템 ‘처음학교로’를 통해 진행된 국공립 유치원 추첨에서 탈락한 뒤였다. ‘처음학교로’에 참여하지 않은 사립유치원들의 추첨에서도 모두 떨어졌다고 했다. 남편은 물론 친정 부모님까지 추첨장에 동원된 터라 허탈감은 더 컸다.

“저출산 해결하겠다는 거 다 거짓말이야. 아파트만 수천 세대 지어 놓고 유치원·어린이집은 턱없이 부족한데 어떻게 애를 더 낳아?” 하소연은 이어졌다. 젊은 부부가 많은 경기도 신도시에 사는 또 다른 친구는 유치원 대기번호가 200번대였다. 매년 이맘때 반복되는 유치원 입학 전쟁.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분노 끝에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 청원까지 올린 친구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한데 국회는 또 헛발질을 했다. 지난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18년도 정부 예산안에 따라 내년 9월부터 소득인정액 상위 10%(3인 가구 소득 723만원, 순자산 6억6133만원) 가구를 제외한 90%에게 월 10만원씩 아동수당을 준다고 했다. 부모 소득과 무관하게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당을 주겠다더니…. 10% 아이들의 권리는 어디로 내팽개친 걸까.

상위 10% 선별은 2010년 이후 이어진 ‘선별적 복지 vs 보편적 복지’ 논의와도 상관없다. 소득과 재산 수준에 따라 헌법이 정한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게 선별적 복지의 기본 방향이다. 90%가 다 받는 수당에서 선별은 의미가 없다. 그저 여야의 적당한 타협일 뿐. 10만원을 받는 90%의 부모들도 불만이다. 안전한 국공립 보육시설이 태부족이고 보육의 질도 아직 낮은데 월 10만원을 준다 한들 부모들이 만족할 수 있을까.

역차별이란 비판이 거세자 정부는 상위 10% 가구에겐 수당 대신 당초 없애려고 했던 자녀세액공제(1인당 연 15만원)를 유지하겠다고 한다. 한번 어긋난 스텝은 계속 꼬인다. 원칙 없는 7096억원(내년도 아동수당 정부 예산)짜리 계산서만 발행됐다.

이 글을 쓰면서 ‘누군가는 또 그 얘기냐’며 지겨워하겠다 싶었다. 보육 정책에 대한 워킹맘들의 분노가 누군가에겐 무한반복 레퍼토리 같을 테다. 하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세금 내는 시민이 같은 고통을 통과의례처럼 반복하고 있다면 바뀔 때까지 소리칠 수밖에 없다. 내 아이들이 부모가 될 때까지 이 지경이라면 나는 ‘아이를 낳으라’고 권할 수가 없다.

박수련 이노베이션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