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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대맛 다시보기]이게 바로 '정통' 전주비빔밥

중앙일보

입력

맛대맛 다시보기 33.고궁 명동점
매주 전문가 추천으로 식당을 추리고 독자 투표를 거쳐 1·2위집을 소개했던 '맛대맛 라이벌'. 2014년 2월 5일 시작해 1년 동안 77곳의 식당을 소개했다. 1위집은 '오랜 역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집이 지금도 여전할까, 값은 그대로일까. 맛대맛 라이벌에 소개했던 맛집을 돌아보는 '맛대맛 다시보기', 33회는 비빔밥(2014년 9월 17일 게재)이다.

전주비빔밤엔 전통적으로 육회·황포묵 등 8가지 필수재료가 들어간다. 여기에 호두·잣 등의 오실과로 멋을 낸다. 고궁은 이 전통을 그대로 따른다. 김경록 기자

전주비빔밤엔 전통적으로 육회·황포묵 등 8가지 필수재료가 들어간다. 여기에 호두·잣 등의 오실과로 멋을 낸다. 고궁은 이 전통을 그대로 따른다. 김경록 기자

"비빔밥이라고 하면 대충 나물 넣고 비벼 먹는 간단한 음식으로 알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전주 전통비빔밥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에요. 참 까다로운 음식이죠. "
전주의 유명 비빔밥 전문점 '고궁'의 박병남(63) 대표는 "비빔밥을 우습게 봐선 안된다"는 말부터 했다. 밥 짓는 순간부터 그릇에 담아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일이 사람의 손길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음식이라는 얘기다. 실제 비빔밥의 고향 전주에서는 집집마다 밥짓는 법부터 다르단다. 어떤 집은 소뼈를 우려낸 물로, 다른 집은 명태국물로 밥을 짓는 식이다.
함께 섞는 재료도 종류에 따라 각각 볶고, 삶고, 데치고, 무치고, 모두 다르게 조리한다. 마지막으로 오실과라고 하는 밤·대추·은행·호두·잣을 올린다.

인생을 걸다 

박 대표는 일찌감치 비빔밥에 인생을 걸었다.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1973년 그는 누나 부부가 운영하던 전주의 한국관이라는 비빔밥 전문점에서 일했다. 당시 한국관은 늘 손님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수도권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관광 오던 때였는데 보통 하루에 20대 넘는 관광버스가 왔다. 박 대표는 "전통 음식이라는 자부심도 있고 사람들도 좋아하니 여기에 내 인생을 걸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직장생활보다는 조그만 담배가게를 하더라도 내 장사가 낫다"고 강조했던 영향도 있다. 확실한 계기는 출근 첫날 있었다.
"출근했더니 가게에 식탁과 의자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출장을 갔다더라고요. 당시 서울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서 사람들이 내려왔는데 전통 비빔밥을 맛보고 싶다고 해서 가게가 통째로 그 사람들 있는 곳으로 출장을 간 거죠. 이 정도라면 되겠다 싶었어요."

경험 쌓은 뒤 서울로 진출

박 대표는 청소와 배달, 서빙 등 잡일을 도맡으며 가게 운영을 조금씩 배워나갔다. 8년 뒤 매형이 다른 사업을 시작하면서 28살의 나이에 한국관을 인수받았다. 661㎡(200여 평)의 넓은 가게를 젊은 나이에 꾸려나간 것이다. 다행히 가게엔 늘 손님이 밀려들었고 15년을 순항했다. 그즈음 박 대표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그래서 전주에 '고궁'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비빔밥집을 냈다. 한국관·성미당·한국집 등 전주에서 역사가 깊고 유명한 비빔밥전문점 못지않게 키우겠다는 결심하고 상표등록을 했다. 그리고 한국관을 매형에게 돌려줬다.
"한 15년 한국관을 잘 운영했는데 매형의 사업이 어려워졌어요. 그러니 제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돌려주고 새로 만든 고궁에 집중했죠. 그리고 3년 뒤 서울의 관광 중심지인 명동에 진출했어요. 비빔밥 하나 먹으러 전국에서들 전주까지 찾아오니까 잘 될거란 자신감이 있었죠."

고궁 명동점. 입구엔 영어·중국어·일본어 메뉴가 함께 쓰여있다. 김경록 기자

고궁 명동점. 입구엔 영어·중국어·일본어 메뉴가 함께 쓰여있다. 김경록 기자

이런 생각으로 1999년 서울 명동에 고궁을 열었다. 하지만 가게를 열자마자 '대박'이 날 거라는 박 대표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박 대표는 "서울이라 가게세랑 인건비가 엄청난데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안 와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때 박 대표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전주와 달리 이곳 손님의 90%가 일본사람이라는 점 말이다. 박 대표는 타깃을 일본인으로 바꿨다. 메뉴판에 영어·일본어·중국어 등 외국어를 써놓고 호텔과 택시 승차장, 관광안내소 등 외국인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전단지와 할인쿠폰을 나눠주며 홍보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신문과 잡지, 방송 등에 소개돼 손님이 많아졌다.

고궁 명동점 내부. 김경록 기자

고궁 명동점 내부. 김경록 기자

비빔밥 표준 된 놋그릇

늘어난 손님만큼 박 대표가 보람을 느낀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자신이 만든 놋그릇이 비빔밥 그릇의 대명사가 된 거다.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고궁면기. 김경록 기자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고궁면기. 김경록 기자

"비빔밥 그릇도 세월따라 변했어요. 처음 식당에 들어갔을 땐 스테인레스를 썼죠. 옛날에는 놋그릇을 썼겠지만 다들 그랬듯 가볍고 관리도 편해 스테인레스로 바꿔 썼던 거죠. 그러다 75년 무렵부턴 돌솥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뜨거워서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게다가 뜨거운 솥 안에서 재료들이 2차로 조리가 되서 원래 내려던 맛이 변형이 되기도 하고요. 원래 전주비빔밥은 60~65℃ 온도에서 먹어야 해요. 재료의 살아있는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거든요. 놋그릇은 그 온도로 유지가 돼요. 그래서 명동에 진출한 99년부터 놋그릇으로 바꿨어요. 그런데 이왕 바꿀 거 디자인을 좀 예쁘고 먹기도 편하게 하고 싶단 생각에 중앙시장에 주문을 해서 모양을 만들어 봤죠. 그릇 아랫부분이 넓고 위가 좁은 그릇으로요. 지금은 고궁면기라고 불려요."
이 그릇은 위가 좁은 모양 때문에 밥을 비빌 때 내용물이 그릇 밖으로 튀지 않고 잘 비벼진다.

하찮은 콩나물이 제일 중요

비빔밥에 한평생을 건 그의 전주비빔밥을 향한 애정은 대단했다. 그리고 그 전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고궁의 전주비빔밥은 재료를 모두 각각 따로 조리해 만든다. 김경록 기자

고궁의 전주비빔밥은 재료를 모두 각각 따로 조리해 만든다. 김경록 기자

"전주비빔밥엔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기본 재료가 있어요. 밥·고추장·육회·고사리·달걀·콩나물·황포묵·도라지 8가지죠. 이 중 가장 중요한 건 콩나물이에요. 싸고 흔해서 우습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 중요해요. 우린 딱 길이가 7㎝되는 어린 콩나물만 써요. 연하고 통통해서 식감 좋고 맛있거든요. 이렇게 흔해서 하찮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중요한 걸 끝까지 잘 지켜나가는 것, 그렇게 끝까지 할 생각입니다."

전주시 음식명인으로 선정된 박병학 고궁 조리장(왼쪽)과 40여 년 함께 해온 박병남 고궁 대표. [사진 고궁 블로그]

전주시 음식명인으로 선정된 박병학 고궁 조리장(왼쪽)과 40여 년 함께 해온 박병남 고궁 대표. [사진 고궁 블로그]

맛대맛에 소개한 후 3년이 지난 사이 고궁은 여전히 서울 명동과 전주에서 사람들을 맞고 있다. 가격도 그대로다. 비빔밥 한그릇이 1만원이 넘는다는 사실에 여전히 부담을 느끼는 고객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좋은 소식도 있다. 한국관에 처음 근무했던 73년부터 40년 넘게 함께 해온 고궁의 조리장 박병학(74)씨가 2016년 전주시가 지정한 음식명인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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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메뉴: 전주 전통비빔밥 1만1000원, 전주 돌솥비빔밥 1만1000원, 육회비빔밥 1만5000원 ·개점: 1999년(전주 본점은 1996년) ·주소: 서울시 중구 명동8가길 27(충무로 2가) ·전화번호: 02-776-3211 ·좌석수: 200석(룸 3개)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설·추석 명절 이틀씩 휴무) ·주차: 인근 유료주차장 이용

비빔밥에 평생 건 박병남 '고궁' 대표 #"60~65℃서 먹어야 재료 맛 제대로" #조리장은 전주시 음식명인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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