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이 안긴 눈물… '짓이겨진 대봉감에 농민은 가슴쳤다'

중앙일보

입력

8일 오전 전남 영암군 금정면 백마리의 한 대봉감 농가에서 시장격리된 대봉감이 산지폐기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8일 오전 전남 영암군 금정면 백마리의 한 대봉감 농가에서 시장격리된 대봉감이 산지폐기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뼈 빠지게 농사지어 놓고 이렇게 뭉갠디 기분 좋겠능가. 가슴이 미어터지오. 터져."

올해 대봉감 풍년은 아이러니하게도 농민들에게 눈물만 흐르게 했다.

대봉감 수확량 증가로 가격이 급락해 시장격리가 조처됐기 때문이다. 대봉감을 산지 폐기하는 전남 영암군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한 대봉감 농가에 시장격리조치로 수확하지 못한 대봉감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사진 연합뉴스]

한 대봉감 농가에 시장격리조치로 수확하지 못한 대봉감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사진 연합뉴스]

영암군 백마리에서 10여 년째 대봉감 농사를 짓고 있는 양덕례씨(72·여)는 아들과 함께 수확한 대봉감 29상자(개당 20㎏)를 감밭 한가운데 내놨다.

멀쩡한 대봉감 상자를 밭에 내동댕이쳐 흩뿌렸다. 양씨 아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감 위를 경운기로 지나며 짓이겼다.

양씨는 차마 이를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애꿎은 마른 나뭇가지만 매만졌다.

공터에 폐기된 대봉감이 쌓여있다. [사진 연합뉴스]

공터에 폐기된 대봉감이 쌓여있다. [사진 연합뉴스]

양씨가 올해 수확한 대봉감은 20㎏ 120상자다. 이중 산지폐기 물량으로 1상자당 1만5000원씩 정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불과 20%가량인 29상자뿐이다.

정부 예산에 맞춰 농가들의 산지폐기 보상 신청량의 약 23%씩만 받아주기로 한 탓이다.

양씨는 "남아 있는 감을 수확해도 인건비와 박스값도 건질 수 없어 포기했다"며 "풍년에 농가들은 더 힘들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바로 이웃 농가에서는 300여 상자의 대봉감을 폐기하기 위해 땅을 굴착기로 파 구덩이에 대봉감을 묻었다. 이 농가의 수확량은 1200여 상자나 됐지만, 대부분 팔지도 못한다.

농민들이 시장격리된 대봉감을 구덩이로 던져 폐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농민들이 시장격리된 대봉감을 구덩이로 던져 폐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월 말 기준 대봉감은 서울 가락동 농산물도매시장 기준으로 한 박스(10kg)당 9818원에 거래됐다. 지난해보다 29%, 평년 대비 17% 가격이 내려갔다.

대봉감을 처음으로 산지폐기한 농협도 시장격리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어 난감해하고 있다.

농협은 대봉감 가격 하락으로 농가 피해가 커질 것으로 전망되자 대봉감 수급 안정 대책을 마련했다.

농민들이 시장격리된 대봉감을 구덩이로 던져 폐기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농민들이 시장격리된 대봉감을 구덩이로 던져 폐기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산지 물량 중 2300여t을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했는데, 경남 10여t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남지역 대봉감이 시장격리 대상이다.

2300여t 중 1400t은 감 말랭이로 상품화하고, 90t은 소외계층에 기증한다.

나머지 810t은 농가 등으로부터 15kg당 4500원에 수매해 폐기한다.

정현 영암 금정농협 과장은 "태풍·이상기후·병충해·가뭄 피해도 없었고 여름철 폭염 덕분에 작황이 좋았다"며 "생산량이 많아 가격이 내려갔는데 대봉감 가격 하락 추세가 5년째 이어지고 있어 내년에도 걱정이다"고 밝혔다.

정우영 인턴기자 chung.w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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