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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남한산성 함락된 적 없고, 근왕군은 명령받고 신속히 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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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병자호란이 발발한 이듬해인 1637년 1월30일. 현재의 서울 송파구 삼전동인 삼전도 나루터. 47일간 치러진 전쟁에서 패한 조선 16대 왕인 인조는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를 향해 세 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을 겪었다. 당시 인조의 이마에는 피가 흥건했다는 속설이 있다.

현장서 본 영화 남한산성 팩트체크 #전투 묘사 일부, 역사적 사실과 달라 #가파른 산 위에 지어져 방어 수월해 #요충지에 적 활동 감시 위한 돈대도 #경기관광공사 ‘도보 여행 명소’ 선정

요새로 평가받는 남한산성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가파르게 쌓았다. [김민욱 기자]

요새로 평가받는 남한산성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가파르게 쌓았다. [김민욱 기자]

인조는 임금을 상징하는 옷인 곤룡포 대신 청의(靑衣)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청 태종의 신하라는 의미에서다. 항복하러 남한산성을 나올 때는 정문인 지화문(至和門·남문)이 아닌 우익문(右翼門·서문)을 이용했다. 청 태종을 욕보인 죄인이기 때문에 서문으로 나오라는 청의 요구였다. 이날의 굴욕은 조선왕조실록에 담겨 있다.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 [사진 CJ E&M]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 [사진 CJ E&M]

이처럼 남한산성은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지난 10월 3일 개봉한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포스터)’은 이런 역사를 잘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누적 관객 수는 384만8198명(지난 5일 기준)이다. 올해 청룡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한·중 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갈등을 봉합한 것과 관련해 야당 쪽에서 “삼전도 치욕 이후 최대의 굴욕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한·중 합의에 중국의 관광 제한 등 부당한 사드 보복에 대한 사과·유감 표명 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영화 개봉에 국내 정치 상황과도 맞물려 남한산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영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전투를 역사적 사실과 일부 다르게 그렸다는 주장이 있다. 영화 후반부 청군의 공격으로 성이 함락 직전 상황까지 몰린 것처럼 표현된 점, 근왕군이 왕의 출병 명령을 어긴 것처럼 묘사된 점 등이다.

치욕의 역사가 새겨진 삼전도비다. [중앙포토]

치욕의 역사가 새겨진 삼전도비다. [중앙포토]

실제 역사 속에서 남한산성은 함락된 적이 없다.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등에 따르면 남한산성은 672년 신라 문무왕 때 쌓은 경기도 광주 동쪽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 인조 2년(1624년) 축성했다.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청량산(해발 497.9m)을 중심으로 전체 둘레가 12.4㎞에 이른다. 남한산성은 가파른 산세 위에 여러 봉우리를 연결해 지어 외부공격을 방어하기가 수월했다.

특히 성곽 중 낮게 쌓은 담장인 여장이 눈에 띈다. 여장의 높이는 70㎝~135㎝ 정도다. 적의 화살이나 총알로부터 몸을 보호하면서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한 개 여장에는 3개의 총안이 있다. 여장과 여장 사이는 15㎝가량 떨어져 있는데 이 공간을 통해 넓은 면적의 조망이 가능하도록 해 방어의 효율성을 높였다.

또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또 한겹의 성벽을 쌓은 옹성과 전략적인 요충지에 설치해 적의 활동을 관찰하는 돈대, 비밀통로인 암문 등도 갖췄다. 이밖에 성 안쪽은 경사가 완만한 데다 물도 풍부해 천혜의 요새였다는 평가다. 학자들 사이에서 남한산성에 식량·화약을 충분히 비축했다면 전쟁이 47일 만에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강진갑 경기대 교수는 “당시 조선에는 천연두까지 유행해 조선군이 좀 더 버텼다면, 더 유리한 조건에서 청과 화약을 맺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병자호란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영화 남한산성과 달리 근왕군은 왕의 명령을 받은 후 신속하게 출동, 청군과 전투를 펼쳤다고 한다. 영화는 출병 명령을 전달하러 온 서달쇠를 죽이려 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근왕군은 인조가 남한산성에 입성한 1636년 12월 14일부터 이듬해 1월 7일까지 청군과 9차례 교전을 치렀다. 당시 조선의 군대가 완벽히 청군을 막지는 못했지만, 목숨이 아까워 출병하지 않을 정도의 군대는 아니었다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경기관광공사는 이달 ‘가봐야 할 도보여행 명소’ 5곳으로 남한산성 등산로 1코스, 소요산, 국립수목원 등을 꼽았다. 남한산성 1코스는 산성 종로(로터리)~북문~서문~수어장대~영춘정~남문~산성 종로(로터리)로 이어지는 3.8㎞ 구간이다. 80분가량 걸린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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