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왜 하필 9475명?…공무원 규모 낙찰가 된 김동연의 한 마디

중앙일보

입력 2017.12.05 12:02

업데이트 2017.12.05 19:20

우원식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김동철 원내대표 등 국민의당 의원들이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예산안 및 부수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개회 전 만나 처리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원식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김동철 원내대표 등 국민의당 의원들이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예산안 및 부수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개회 전 만나 처리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 하필 9475명일까.
4일 여야 예산안 협상에서 공무원 증원 규모가 최종 9475명으로 ‘낙찰’된 배경에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점진적 의견접근, 그리고 막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낸 ‘여야 중간치’ 아이디어가 있었다.

협상 초반 민주당 ‘1만500명’ vs 국민의당 ‘8870명’ 맞서
민주당 “1만명 하한선 허물테니 국민의당도 좀 더 해달라”

9500명 거론되다 야당 다시 ‘9450명’ 요구
협상장 배석 김동연 부총리 “딱 중간치 9475명 해달라”
민주당ㆍ국민의당 “OK”…한국당은 ‘유보’

주먹구구식 합의에 “거래ㆍ흥정 대상 전락” 비판도
합의문 다급하게 작성된 듯 ‘2018년’ 등 잘못 표기

이날 여야 3당 원내대표ㆍ정책위의장단 ‘2+2+2 협상’에 참여한 복수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공무원 증원 예산은 마지막까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 원안(국가 공무원 1만2221명 증원)에서 조금 물러선 1만500명 밑으로는 안 된다며 하한선 사수를 고집했다. 자유한국당은 예년 수준의 증원 규모인 7000명 선을 요구했고 국민의당은 8870명 증원 안을 제시했다. “정부 원안 1만2221명에서 불요불급한 내근직 2365명을 뺀 현장형 공무원 9856명 중에서도 자리 재배치를 통해 10% 정도(986명) 더 줄일 여지가 있다. 그래서 8870명(9856명-986명) 정도가 가장 합리적이다”는 게 국민의당 산출 근거였다. 이를 토대로 국민의당이 마지노선으로 잡은 건 9000명 선이었다.

신경전이 오간 협상에서 꿈쩍도 안할 것 같던 민주당이 변화의 여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가 “민주당이 1만명 하한선을 허물테니 국민의당도 9000명에서 좀 더 해달라”고 요구한 게다. 그러면서 1만명과 9000명의 중간인 9500명 증원 안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다시 국민의당이 ‘50명 삭감론’을 폈다. “9500명은 반올림을 하면 1만명에 가까워져 야당이 손해본 느낌이니 50명을 깎은 9450명으로 하자”는 요구였다. 급물살을 타는 듯했던 협상 분위기는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9500명(민주당)과 9450명(국민의당) 사이에서다.

여야 3당 원내대표가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합의한 뒤 합의문 발표를 하고 있다. 협상장에 배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도 이 자리에 함께 했다.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 김 부총리 [연합뉴스]

여야 3당 원내대표가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합의한 뒤 합의문 발표를 하고 있다. 협상장에 배석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도 이 자리에 함께 했다.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 김 부총리 [연합뉴스]

이때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협상장에 정부측 대표로 배석했던 김 부총리는 “그러면 9500명과 9450명의 딱 중간이 9475명이니 그 선에서 해주십시오. (원안에서 바뀌어) 각 부처별로 재조정을 해야 하긴 하는데, 우리가 타이트하게(여유 없이 빠듯하게) 해보겠습니다”라며 여야를 설득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반 쪼개기’ 의견에 “OK”(한국당은 ‘유보’ 의견) 하면서 결국 공무원 증원 합의안은 김 부총리가 제시한 수치대로 9475명이 됐다.

여야가 국가 재정이 걸린 중대사업 예산임에도 뚜렷한 근거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결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국가 재정이 거래와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한 결과”라며 “공무원 증원 사업을 왜,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본 취지가 퇴색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당초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협상 비관론이 우세하던 상황이었다. 국회에서는 이날 여야 3당 협상에서도 입장차가 좁혀지지 못할 거란 관측과 함께 ‘12월 8일 처리설’이 유력하게 돌았다. 일부 국회의원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8일 본회의가 열려도 9일 새벽 돼서야 통과되지 않겠느냐. 8일은 철야 근무를 해야 될 것 같다”는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

협상에 물꼬가 트인 계기는 이날 오전 우원식ㆍ김동철 원내대표 간 ‘밀월 조찬’이었다고 한다. 김 원내대표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내가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필요성을 얘기하니까 우 원내대표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정기국회가 끝나면 곧바로 임시국회를 소집해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 들어가자’고 화답하더라”고 전했다.

국민의당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어 다당제 유지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대과제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국민의당 지상과제인 선거구제 개편 논의의 원칙적 합의 이후 예산 협상도 일사천리로 나갔다”고 말했다. 실제 휴일인 지난 3일 냉각기를 보낸 여야는 4일 오전 10시 30분부터 3당 원내대표 협상 테이블을 다시 차렸고 점심을 도시락으로 해결하는 등 줄다리기 협상을 이어갔다.

여야 3당 원내대표가 4일 오후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 합의문'이 급하게 작성된 탓인지 날짜 등이 잘못 적혀 있다.

여야 3당 원내대표가 4일 오후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 합의문'이 급하게 작성된 탓인지 날짜 등이 잘못 적혀 있다.

결국 6시간 20분여 마라톤 협상 끝에 오후 4시 50분쯤 여야 3당 원내대표가 합의문을 들고 협상장을 나왔다. 다급한 분위기 속에서 합의 문안이 작성된 탓인지 취재진 앞에 제시된 문안에서 군데군데 오기(誤記)가 발견되기도 했다. 합의 날짜가 ‘2018년(2017년의 오기) 12월 4일’로 잘못 적혔고 합의문 발표 때 우 원내대표는 잘못된 날짜를 그대로 읽어내려갔다.

합의문 6항에 명시한 법인세 최고세율(25%) 적용 과세표준 구간도 ‘3000억원 초과’로 표기해야 함에도 ‘3000억원 이상’으로 적혔다. 국회 한 관계자는 “급하게 합의문을 작성해 발표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 채 그대로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우ㆍ김 원내대표는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다시 만나 세부 합의안의 일부 문구를 손질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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