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강원랜드에 내린 우울한 첫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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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영익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영익 사회2부 기자

한영익 사회2부 기자

서울에서 3시간 반가량 운전해 강원도 정선군에 도착한 지난 15일 오후, 그곳에는 올해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스키 시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정선군 고한읍에는 강원랜드가 운영하는 ‘하이원스키장’이 있다.

그런데 한 주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또 스키 타러 왔다가 카지노 가서 많이들 망가지겠네.” 스키장 있는 곳이라면 으레 반가워야 할 첫눈이 근심거리가 될 정도로 이 지역에서 도박 중독자 문제는 심각했다.

2박3일 동안 머물며 본 사북읍 일대는 병색이 완연했다. 지역 거주민의 10%가 ‘도숙자’(賭宿者·도박+노숙자,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객지에서 떠도는 이들)로 추정되는 곳이다. 아침 일찍 등산복 차림으로 식당에서 국밥을 먹는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붉은 실핏줄이 엉켜 있었다. 초점도 뚜렷하지 않았다. 호객꾼들이 이들에게 모텔과 안마방 명함을 건네는 이른 아침 읍내 풍경은 대한민국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버스터미널에는 카지노 포인트를 현금으로 교환해 주는 ‘콤프깡’ 업자가 득시글거렸다. “콤프 정리하고 가라”는 말에 ‘없다’고 답하자 “에이. 많아 보이시는데…”라며 팔을 잡아끌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이런 일이 다반사인 곳에 가족 동반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최근 중앙일보에 ‘2017 도숙자 리포트’ 기사가 나간 뒤 “나도 가족 여행을 갔다가 다시는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이대로 가면 정선군 사북·고한읍 일대는 버려진 ‘한탕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완전히 버려진 지역이 되기 전에 재생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워터파크나 트레킹 코스 같은 레저 공간을 조성한다고 하지만 그 정도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다. 라스베이거스 같은 대도시 모델이 비현실적이라면 프랑스의 앙기엥레뱅(인구 1만2000여 명)을 참고할 만하다. 그곳에선 카지노 수입의 약 15%를 문화·예술 분야에 투입한다. 유네스코는 2013년 이곳을 창의도시로 선정했다.

곧 강원랜드 새 사장이 선임된다고 한다. ‘낙하산’이 아닌 이 지역 문제 해결에 의지와 능력이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강원랜드 한 해 영업이익 6000억원 중 상당 부분을 쏟아부을 각오도 필요해 보인다. 동네가 버림받으면 폐광지역 활성화라는 강원랜드 존립 근거가 흔들린다. 지역 주민이 근심 어린 눈길로 흩날리는 첫눈을 바라보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한영익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