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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여론 이용 재판 독립 흔드는 시도 있다" 작심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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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구속적부심 등 적폐 수사와 관련된 법원의 결정을 두고 정치권과 사회적 비난 여론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우려를 표했다.

이일규 전 대법원장 10주기 추념식서 #영장 등 법원 결정 비난 여론 비판 #'블랙리스트' 의혹엔 "내부 독립" 주문

김 대법원장은 1일 오전 대법원에서 열린 효암 이일규 전 대법원장 서세(逝世) 10주기 추념식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헌법 정신과 법치주의의 이념에 어긋나는 것으로 매우 걱정되는 행태”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권력의 간섭이나 강압은 군사독재시대의 종국과 함께 자취를 감췄지만,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들은 아직도 존재한다”며 “여론이나 SNS로 가장하고 전관예우 논란을 이용하거나 사법부의 주요 정책 추진과 연계해 재판의 독립을 흔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이일규 전 대법원장 서세 10주기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이일규 전 대법원장 서세 10주기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적폐 청산 수사’를 받는 주요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종종 기각되고, 구속된 피의자가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석방되는 일이 잇따르자 정치권과 온라인에서 법원을 비난하는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달 22일과 24일 서울중앙지법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온라인 여론 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던 김관진 전 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을 구속적부심을 통해 석방했다. 그 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트위터에 구속적부심을 맡은 신광렬 판사를 “우병우와 TK 동향, 같은 대학, 연수원 동기, 같은 성향”이라며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같은 당 안민석 의원도 페이스북에 “적폐판사들을 향해 국민과 떼창으로 욕하고 싶다”고 비난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들의 글을 퍼 나르며 비난 가세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러한 어지러운 상황에서 재판의 독립을 지켜내는 것이 대법원장의 첫째가는 임무임을 효암 선생의 생애 앞에서 새삼 명료하게 깨닫는다”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내부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법관의 독립과 사법부 내부 신뢰를 강조했다.

정년퇴임식을 마치고 법원을 떠나는 이일규 전 대법원장의 생전 모습. [중앙포토]

정년퇴임식을 마치고 법원을 떠나는 이일규 전 대법원장의 생전 모습. [중앙포토]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 내부로부터 법관의 독립이 개혁 과제의 하나로 논의되는 지금 사법부 내부 신뢰가 높았던 효암 선생이 더욱 그립다”면서 “나이든 판사와 젊은 판사들 사이에도 시간적 간극이 있는데 제도적 방안도 필요하나 근본적으로 동료 법관으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부당한 압력도 선배들이 막아주리라 후배들이 믿을 수 있고, 일선 재판장이 좋은 재판을 고민할 때 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발 벗고 도와주리라 신뢰한다면 어떤 불신과 의혹도 자리 잡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법원장은 1988년 2차 사법파동으로 김용철 대법원장이 물러난 뒤 법조계 안팎의 추천으로 대법원장이 됐다. 그는 대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 관련자들에게 대법원이 사형 판결을 내릴 때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장 시절에는 정치권의 영향력을 차단해 사법부 독립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직한 성품과 해박한 법 지식 때문에 ‘통영 대꼬챙이’ ‘살아있는 판례집’ ‘선생님 법원장’ 등으로 불렸다.

이날 추념식에는 김용철‧윤관‧이용훈 전 대법원장, 윤영철 전 헌법재판소장, 이 전 대법원장의 차남인 이창구 전 대구고등법원장 등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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