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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동북아 석유물류 중심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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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나라도 에너지 자원의 자주 역량 강화, 대체에너지 개발 및 보급, 에너지 절약 정책을 펴오고 있지만 기존 정책을 되풀이한다는 인상이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개발정책이 장기적 대안이라면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동북아 석유물류시장의 활성화는 중.단기적 대안이다. 바로 동북아 석유물류 허브 구축 전략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04년 12월 고유가시대를 만들어낸 5대 주범의 하나로 중국의 석유 수요 증가를 꼽았다. 종전의 석유수출국이었던 중국은 1993년 이후, 인도네시아는 2004년 이후 석유수입국이 됐다. 동북아시아 3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의 석유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 지역에서의 석유거래가 활성화됐다. 이른바 친디아(Chindia) 효과가 석유시장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늘어난 석유 수요와 낮은 석유 자급률은 석유물류 중심지를 구축하는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협이다.

한편 석유 공급 측면은 어떤가. 석유정점연구협회(ASPO)에 따르면 세계의 연간 석유생산 최고점(Peak Oil)은 2005년으로 예측됐다. 이 협회는 심해나 북극지역 석유생산량 및 천연가스 생산량을 모두 합쳐야 에너지 생산 정점이 2010년 정도까지 연장될 것으로 관측했다. 이는 석유수급의 불균형이 장기화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석유시장이 장기적인 콘탱고(contango-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시장) 시황으로 구조화될 것이라는 데서 우리의 정책 대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석유 소비국이지만 정제능력 면에선 세계 5위다. 석유 수요량의 96%를 수입해 쓰고 있지만 정유회사들은 국내소비를 충당하고도 하루 32만 배럴 규모의 석유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현대식 정제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는 동북아 3국 중 석유 물류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수심이 깊어 대형 유조선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중국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의 국제화 및 개방화, 일본과 비교하면 저비용 구조가 우리의 이점이다. 석유 관련 다국적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해 동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사업하기를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원빈국인 싱가포르도 국제적인 오일허브를 구축해 석유산업 활성화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도모할 뿐 아니라 금융산업 발전과 고용창출을 통해 국부를 증대시키고 있다.

석유제품의 거래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중동산 원유가 한국 시장에 들어와 석유제품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금융거래가 파생된다. 석유거래의 중심에는 현물.선물.장외시장이 열려 금융시장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된다. 그런데 석유거래 중심지로 활성화되기 위해선 물류중심지 구축이 필수적이다. 물류중심지의 핵심은 석유 저장시설이다. 그래야 정유회사나 다국적 석유 무역회사들이 대규모의 석유제품을 한국으로 들여와 국내 석유공급의 안정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김창수 중앙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