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동에는 두 개의 소녀상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를 기리는 두 소녀상 중 하나는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에 있다. 다른 하나는 인근 이화여고 도서관 입구에 있다.
두 소녀상은 이 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세워졌다. 먼저 만들어지고 크기가 더 큰 것을 ‘큰 소녀상’, 나중에 학교 안에 만들어진 작은 소녀상을 ‘작은 소녀상’이라 부른다.
큰 소녀상은 2년 전 54개교 1만6000여 명의 학생들의 뜻을 모아 건립됐다. 이화여고 역사동아리 ‘주먹도끼’ 학생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작은 소녀상은 같은 동아리의 후배들이 2년 뒤 세웠다. 후배들은 전국의 초·중·고 239개교에 작은 소녀상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캠페인과 모금 활동을 한다.
239라는 숫자는 국내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수와 같다. 한 학교가 할머니 한 분이라도 기억해 보자는 취지다. 지난 11일 이기정 할머니의 별세로 현재 남은 위안부 생존자는 33명이다.
현재까지 작은 소녀상은 이화여고 도서관 입구의 것을 포함해 177개교(영국 소재 1개교 포함)에 전달됐거나, 건립 계획이 확정됐다.
큰 소녀상 건립의 주역인 선배 권영서·윤소정(19)양은 지난 27일 후배들을 만났다. 권양은 후배 김로권(17)·이나연·박규림(16)양에게 “소녀상을 잘 관리해서 우리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말했다. 며칠 전 후배들은 큰 소녀상에 모자와 목도리를 씌웠다.
“우리가 소녀상을 세운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죠.” 후배들과 마주 앉은 영서양은 2년 전 소녀상 제막식 당시를 회고했다. 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교내 동아리가 유적지 답사에서 벗어나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낸 일이기도 했다.
그 시작은 우연처럼 찾아왔다. 2014년 말 세월호 사건 추모 배지를 준비하다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나비 배지’를 봤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를 잘 몰랐는데 그 배지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우리도 직접 배지를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뭔가 더 해보고 싶어 고민하다 소녀상 건립까지 추진하게 됐죠.”
그렇게 세워진 큰 소녀상은 축소판인 작은 소녀상으로도 제작됐다. 나비 배지가 알려준 역사가 선배들의 큰 소녀상으로, 다시 후배들의 작은 소녀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작은 소녀상은 전국 각지의 학교로 전달되고 있다. 후배 로권·나연·규림 양의 ‘작은 소녀상 건립 운동’을 통해서다.
로권양은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우리의 활동도 자칫하면 잊힐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래도 소녀상을 더 자주 보면 관심이 줄어들 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작은 소녀상을 여러 곳에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그렇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한 개에 약 50만원이 드는 작은 소녀상 건립 비용은 각 학교 학생들이 모은다. 주먹도끼 소녀들은 나비 배지나 ‘평화비 배지’를 판매해 남긴 수익금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홍보를 한다. 건립 비용이 부족한 학교를 돕기도 한다.
1학년인 나연양과 규림양은 동아리의 차기 회장단으로 언니들의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239개의 작은 소녀상 건립 이후엔 청와대에 작은 소녀상의 세운다는 꿈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때 한·일 위안부 합의 백지화를 공약했는데, 아직 변한 게 없잖아요. 저희가 작은 소녀상을 청와대에 직접 전달하면서 다시 한번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화를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20여 명의 주먹도끼 회원들은 최근 학술부를 만들어 위안부 문제를 공부하고, 교류부도 만들어 일본 학생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규림양은 “자매학교인 일본 야마나시(山梨)현의 에이와(英和)여고 학생들과 SNS로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꿈이 이뤄진다면 일본 현지에도 처음으로 작은 소녀상이 세워지게 된다.
주먹도끼 선후배들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8월 14일을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법(위안부피해자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해 “조금 늦었지만 다행이다”고 입을 모았다.
“얼마 전에도 할머니 한 분이 일본의 사과도 못 받고 돌아가셨쟎아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기림일도 생겼으니 어른들도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소녀들의 기도는 어른스러웠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