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앞에선 치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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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일 새벽, 서울강남경찰서 형사계. 이발관에 든 강도를 잡기 위해 출동했던 허한웅 순경(31)이 칼에 맞아 병원에서 숨져간 시간, 정이영(22)등 범인 2명이 조사를 받는다.
범인들의 눈빛은 자신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전혀 의식 못하는 듯 독기와 살기를 담아 번뜩인다.
『허순경을 어떻게 찔렀나」『권총을 빼드는 순간 발로 탄 창을 걷어차고 왼손으로 가슴에 품었던 칼을…」
뱀처럼 고개를 쳐들고 동요도 망설임도 없이 범행순간을 말하는 범인들.
이리에 본거지를 둔 폭력조직「대전 사거리파」의 행동 책인 정 등은 지난해 7월 칼부림의 무대를 서울로 옮겼다고 했다.
지난해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이리에서 폭력조직「배차장파」와 관할권을 둘러싸고 한바탕 칼부림을 한 뒤『보복도 피하고, 더 화끈한 일감을 찾아 상경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
정 등은 지난달부터 강남일대의 이발관을 찾아다니며 퇴폐영업의 약점을 잡아『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애들을 풀어 영업을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했다. 생선회칼을 휘둘러 금품을 갈취, 세력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서진 룸살롱사건」의 칼잡이들을 연상시키는 또 다른 칼잡이 일당 범법 꾼들.
특수강도 등 각각 전과 3범과 5범, 서울과 이리를 오가며 칼을 휘둘러 2∼3차례씩 기소중지가 되어있으면서도 신고를 받고 출동한 무장 경찰관에게 서슴없이 칼을 휘두르는 무법자들을 앞에 두고 우리사회의 법과 치안의 현주소는 과연 어디인지 막막한 느낌이었다. <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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