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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스티커…학교 옆 편의점엔 '현란한' 담배 광고 25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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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초등학교 근처 편의점에 진열된 담배 제품들. 현란한 화면을 활용한 디스플레이 방식 광고가 눈길을 끈다. 계산대에는 광고를 홍보하는 깔개도 있다. 또한 경고그림을 가리기 위해서 담배를 모두 거꾸로 진열한 상태다. 정종훈 기자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초등학교 근처 편의점에 진열된 담배 제품들. 현란한 화면을 활용한 디스플레이 방식 광고가 눈길을 끈다. 계산대에는 광고를 홍보하는 깔개도 있다. 또한 경고그림을 가리기 위해서 담배를 모두 거꾸로 진열한 상태다. 정종훈 기자

2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초등학교 근처 편의점에는 형형색색의 광고 10여 개가 담배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다. '프렌치' '잘 구웠네' 등의 긍정적 문구가 현란한 화면으로 강조됐다. 진열대 앞에는 담배 제품을 홍보하는 대형 깔개가 깔렸다. 제품 가격을 확인하는 계산기 모니터에도 담배 광고가 여럿 부착됐다.

건강증진개발원, 전국 학교 주변 소매점 3000곳 조사 #편의점 100% 담배 광고, 대부분 가게 밖서 광고 보여 #조명 활용한 광고 다수…"아동·청소년 자연스레 노출" #갈수록 소매점 담배 광고 수 많아지고 형태 교묘해져 #담배 광고 규제 쉽지 않아…WHO는 '낙제점' 주기도 #"혐오스럽다" 담뱃갑 경고그림 가리는 곳 28% 달해 #이를 규제할 법안 통과는 국회 문턱서 멈춰진 상태 #전문가 "법안 개정·경고그림 확대 등 강력 대책 필요"

  진열대에 전시된 담뱃갑은 모두 위아래가 뒤집혀 있었다. 담뱃갑 상단에 부착된 경고그림을 잘 안 보이게 숨긴 것이다. 50대 여성 점주 A 씨는 "손님들이 그림과 눈 마주친다고 싫어해서 하나하나 다 뒤집어서 전시해놨다"고 말했다.

  이 학교 4학년인 최모(11)군은 일주일에 5~6번씩 편의점에 들른다고 했다. 친구와 라면을 먹던 최군은 "편의점에서 계산할 때마다 담배 광고가 있어서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담배는 사진만 봐도 징그럽고 싫다"고 말했다.

  편의점 앞에서 만난 3학년 B군은 "담배 광고가 호기심을 갖게 한다"면서 "계산대 뒤에 번쩍거리는 광고를 보면 백화점 같다. 펭귄 같은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서 장난감인줄 알고 사달라고 했다가 누나한테 혼났다"고 말했다.

  이날 중구의 한 고교 근처 편의점에도 궐련형 전자담배 광고가 큼지막하게 걸렸다. '상쾌' '간편'이라는 단어를 밝은 화면으로 표시했다. 매대 한켠에는 제품 모형을 가져다놓고 자세히 설명하는 자리도 따로 마련했다. 편의점 주인 C 씨는 "요즘 기계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경고 그림과 문구가 새겨진 담배. [중앙포토]

경고 그림과 문구가 새겨진 담배. [중앙포토]

  이처럼 학교 근처 편의점은 빠짐없이 담배 광고를 하고, 그 개수도 평균 25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담배 진열대에서 후두암·폐암 등 흡연 폐해를 알리는 경고그림을 가리는 행위도 여전했다. 선필호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부연구위원은 30일 열리는 담배규제 정책포럼에서 이러한 담배 광고ㆍ진열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한다고 29일 밝혔다. 지난 9~10월 전국의 학교 주변 200m 내 담배소매점 중 3000곳(편의점 1235곳)을 현장 조사한 내용이다.

학교 근처 소매점에 표시된 다양한 담배 홍보 문구.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학교 근처 소매점에 표시된 다양한 담배 홍보 문구.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이번 조사에 따르면 소매점 10곳 중 9곳(91%)은 담배 광고를 하고 있다. 특히 아동·청소년들이 많이 찾는 편의점은 100% 광고에 나섰다. 편의점은 한 곳당 평균 담배광고 개수도 25개로 가장 많았다. 슈퍼마켓(6.5개), 기타 소매점(2.3개)과 비교하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또한 가게 내부의 담배 광고가 외부로 노출되는 비율도 95.4%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현행법상 가게 안 광고가 밖에서 보이면 안 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학교 옆 소매점 담배 광고·진열 보니

학교 옆 소매점 담배 광고·진열 보니

  광고 방식은 스티커가 36.2%로 가장 흔했다. 현란한 화면을 활용한 디스플레이 광고(30.1%)가 그 뒤를 이었고, 제품을 강조하는 조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16.6%였다. 이러한 광고들은 대부분 눈에 가장 잘 띄는 계산대 주변에 집중돼있다. 선필호 부연구위원은 "편의점을 찾은 아동ㆍ청소년들이 계산하기 전부터 수많은 담배 광고에 자연스레 노출된다는 문제점이 크다"고 말했다.

소매점의 대표적인 담배 광고 형식. 광고 형태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소매점의 대표적인 담배 광고 형식. 광고 형태는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문제는 담배 광고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많아지고, 더 교묘해진다는 점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편의점 1곳당 담배 광고 개수는 2015년 16.8개, 지난해 20.8개를 거쳐 올해는 25개까지 늘어났다. 광고 형태도 LED 광고판이나 계산대 모니터, 풍선 등을 활용하면서 소비자 시선을 더 끌어모으고 있다. 이처럼 어린 아이들이 담배 광고를 접하는 경우가 늘어나면 향후 흡연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담뱃갑 경고그림을 가리기 위해 담배 제품을 거꾸로 진열한 편의점 내부 모습.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담뱃갑 경고그림을 가리기 위해 담배 제품을 거꾸로 진열한 편의점 내부 모습.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장영진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 사무관은 "담뱃값 인상 후에 소매점 광고를 활용한 판촉 활동이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라면서 "세계보건기구(WHO)의 세계흡연실태보고서에선 국내 담배 광고·판촉 규제가 꾸준히 낙제점을 받고 있다. 정부도 향후 금연 정책의 초점을 소매점 광고 규제 쪽에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매점의 담배 광고 규제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담배 회사가 소매점주들에게 광고 부착에 따른 지원금을 제공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성규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는 "현행 담배사업법상 담배 회사가 소매상에게 금전적 이익을 줄 수 없지만, 현장에선 전혀 준수되지 않고 있다. 흡연율을 떨어뜨리려면 있는 법부터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정부가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 거꾸로 진열된 담배 제품들. 소매점에선 이처럼 경고그림을 가리는 용도로 담배를 거꾸로 진열하는 경우가 많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서 거꾸로 진열된 담배 제품들. 소매점에선 이처럼 경고그림을 가리는 용도로 담배를 거꾸로 진열하는 경우가 많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가 시행된 후 꾸준히 지적된 '경고그림 가리기'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소매점에서 담배 진열시 거꾸로 세우는 등 경고그림을 가리는 비율은 28.3%에 달했다. 경고그림을 가리는 용도로 쓰이는 ‘담배 케이스’ ‘스티커’ 등을 배포ㆍ판매하는 곳도 11.6%였다.

담뱃갑 경고그림을 가리기 위한 장치들.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담뱃갑 경고그림을 가리기 위한 장치들. [자료 선필호 부연구위원]

  이러한 행위들을 규제할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담배 진열시 경고그림을 가리는 행위를 금지하고, 학교 출입문 반경 50m 절대정화구역 내 소매점의 담배 광고를 원천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 발의)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소매점 담배 광고 규제될까

  전문가들은 아동·청소년의 흡연을 예방하기 위해선 소매점 광고 금지와 경고그림 확대처럼 보다 강력한 금연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성규 겸임교수는 "소매점 담배 광고를 막는 법안을 최대한 빨리 통과시키고 현재 잘 지켜지지 않는 법 조항들도 손질해야 한다"면서 "경고그림을 가리는 행위가 소용 없도록 면적을 최대 50%에서 더 키우고 그림 표현 수위도 더 높여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아예 담뱃갑에 광고를 실을 수 없도록 하는 '플레인 패키징'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코스에선 발암물질 나와"

한 남성이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를 피우는 모습. 아이코스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연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한 남성이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를 피우는 모습. 아이코스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연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한편 최근 인기가 늘고 있는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에서 일반 담배와 마찬가지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연구가 나왔다. 30일 담배규제 정책포럼에 참가하는 스위스 산업보건연구소 오렐리 베르뎃 박사는 이러한 내용의 아이코스 배출 성분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베르뎃 박사가 아이코스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을 측정했더니 국제암연구소(IARC)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일반 담배 배출량의 74% 수준이었다. 인체에 유해한 아크롤레인 성분도 궐련 대비 82%가 나왔다. 니코틴 농도는 일반 담배의 84% 수준이었다. 그동안 제조사인 필립모리스에서 '찐 담배'인 아이코스의 유해물질이 일반 담배보다 90% 적다고 주장해온 것과는 차이가 있다. 베르뎃 박사는 "아이코스의 화합물 농도가 일반 담배보다 낮은 편이지만 위험이 완벽히 제거된 게 아니라는 기존 연구와 일맥상통하는 결과"라고 밝혔다.

  또한 일본에선 궐련형 전자담배를 일반 담배와 병행해서 피우는 '이중 사용' 양상이 강하게 나타났다. 오사카 국제암센터 타부치 타카히로 박사 조사에 따르면 일본 내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의 72%가 일반 담배도 같이 피운다고 밝혔다. 20~30대 젊은층이 궐련형 전자담배를 더 선호했다. 응답자의 12%는 궐련형 전자담배 증기에 노출된 적 있었고, 이 중 37%는 눈ㆍ목 통증 같은 부정적 증세를 겪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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