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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사학, ‘입학금 폐지’ 백기 투항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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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사회1부 기자

윤석만 사회1부 기자

“백기 투항한 거죠. 교육부 압박이 워낙 세니….”

서울의 한 사립대 A 기획처장은 28일 나온 ‘사립대 입학금 폐지’ 소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날 교육부는 사립대들과 2022년까지 입학금을 전면 폐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교육부는 ‘합의’라는 표현을 쓰지만 사립대들 이야기는 다르다. A 기획처장은 “지난 9일만 해도 입장이 너무 달라 평행선을 달렸다고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결론이 났다고 하니 기가 막히다”고도 했다.

교육부 발표대로라면 사립대들은 연간 2431억원에 이르는 입학금을 군소리 없이 포기한 셈이다. 입학금 폐지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다. 교육부는 “사립대 입학금 중 20%만 실제 입학 관련 용도에 쓰이고 있다. 20% 정도만 국가장학금으로 대학에 지원하고 나머지는 못 받게 하겠다”는 입장을 지난달 밝혔다. 이날 발표도 이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사립대들은 ‘입학금의 40% 실비 인정’을 요구했다. 이렇게 쉽사리 가닥 잡히지 않을 듯한 입학금 폐지 문제에 대학들이 순순히 ‘합의’해 준 것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애초 교육부는 내년부터 입학금 폐지의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를 공언해 왔다. 그렇게 하려면 11월 말까지 매듭을 지어야 했다. 12월엔 각 대학이 내년도 등록금과 입학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 9월 이후 사립대와의 논의에 진전이 없자 지난달 입학금 실태를 공개했다. “전국 80개 대학 입학금을 조사하니 실제 입학 관련 용도는 20%에 불과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머지 80%가 교수 인건비 등 대학 운영에 쓰인다는 것은 교육부도 10여 년째 익히 알고 있었다.

사학이 교육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건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에서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사립대들은 8년째 등록금을 동결했다. 대학교육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사립대 수입총액은 2014년 23조7000억원으로 3년간 5% 증가에 그쳤다. 같은 기간 국고보조금 비중은 13%에서 20%로 급증했다.

교육부는 재정지원 대상을 선정할 때 정책에 얼마나 협조적인지를 반영한다. “갈수록 교육부 입김이 커지고 대학의 자율성은 쪼그라든다”고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말했다. 대학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지침이라면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 입학금이 폐지되면 당장 줄어드는 신입생 부담과 대학 재정 악화로 인한 교육의 질 저하의 득실을 잘 견주어 봐야 한다.

윤석만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