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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코바코 텃세에 언론 단체도 젠트리피케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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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정탁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정탁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서울시청 옆에 프레스센터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엔 신문협회·신문방송편집인협회·기자협회는 물론이고 언론중재위원회와 신문윤리위원회, 언론진흥재단과 언론학회가 입주해 있다. 또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는 물론이고 유명 인사 기자회견도 이 건물에서 자주 이루어진다. 한국 언론의 명실상부한 터전이다.

언론단체 터전인 프레스센터 #5공 강압으로 코바코가 소유 #최근 입주단체에 임대료 압박 #언론 없는 프레스센터 될 판

그런데 이 건물 주인은 언론단체가 아니라 방송광고 판매를 대행하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다. 코바코는 입주자인 언론단체에 임대료 등으로 216억원을 달라는 볼썽사나운 소송을 올해 초 제기했다. 이는 프레스센터를 내놓으라는 사실상의 협박이다. 이달 초 법원은 코바코 손을 들어주었지만, 이 건물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살피면 법적으로 가릴 사안이 아니다.

프레스센터가 지어지기 전엔 여기에 3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1층은 서울신문이, 2층과 3층은 신문회관이 소유했는데 신문편집인협회 등 한국 언론을 대표하는 15개 언론단체가 신문회관에 입주했다. 1981년 재개발사업으로 기존 신문회관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프레스센터를 새로 지어 1985년 ‘신문의 날’에 맞춰 개관했다. 건설비는 코바코 공적자금에서 나왔다. 공적자금이란 방송광고 판매를 독점하는 데서 생겨나는 엄청난 이익의 일부를 사회 환원의 차원에서 형성한 돈이다.

그런데도 민사소송까지 제기한 코바코 처사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미 코바코는 방송회관을 서울 목동에, 광고문화회관을 잠실에 소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언론의 보금자리인 프레스센터까지 소유하며 지배하려는 건 무슨 이유일까? 혹시 건물의 자산 수입에 집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시론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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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건 정부 탓인데 그 뿌리는 프레스센터 소유권을 코바코 앞으로 등기하도록 강압한 1980년대 5공화국 정부의 조치다. 5공 정부는 언론 공익시설 확충이란 당초 취지보다 정부 직속 기관인 코바코 소유 쪽을 택함으로써 새 건물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이는 언론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거로 보인다.

6공 정부 들어서면서 잘못된 결정을 시정하려는 입장 변화가 생겼다. “프레스센터는 설립 목적에 맞게 그 소유권을 언론회관에 귀속시키는 것이 옳다”는 공식 입장을 정부는 1989년 냈다. 사실 프레스센터와 경기도 남한강연수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관장하고, 방송회관과 광고문화회관은 방송통신위원회 산하에 두는 게 맞다. 정부도 여러 차례 관계 부처 조정회의 때마다 이를 재확인했다. 심지어 국유재산 관리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기획재정부도 2012년 내부 검토와 외부 법률자문을 거쳐 프레스센터 소유권을 현물 감자 방식으로 국고 환수 후 문체부로 이관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기재부 자체 결정만으로 충분하다는 결론까지 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방통위가 이런 결론을 뒤집었다. 방통위에 소위 실세 위원장이 등장한 탓이다. 그래서 기재부조차 방통위 저항 앞에 개혁 의지를 포기해야만 했다. 또 부처 간 갈등 조정의 상급 책임기관인 총리실과 청와대도 방통위의 무분별한 기득권 집착을 방관했다. 5공 정부의 잘못된 조치를 시정하려는 조치들이 이처럼 무산된 데는 언론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는 음모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고선 지금과 같은 사태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물론 방통위의 기득권 유지도 한몫했다고 보인다. 순리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그동안 부처 이기주의에 빠져 정치권의 잘못된 판단에 맞장구치는 행태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법적 다툼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부 부처 간 정책 협의를 통해 프레스센터의 소유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그동안 언론계에 쌓인 눈에 보이지 않는 적폐를 청산하는 길이기도 하다.

“정치를 바로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느냐”는 제자 자로의 물음에 공자는 “이름을 바로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흥하지 않고, 예악이 흥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않아서이다. 이것이 공자의 유명한 정명론(正名論)이다. 프레스센터도 이름에 걸맞아지려면 언론을 대표하는 단체들이 입주해 있어야 한다. 만약 적절치 않은 임대료로 이들 언론단체가 더는 프레스센터에 입주하지 못한다면 그 건물을 프레스센터로 부를 수 있는가? 또 프레스센터 하나 없는 나라를 과연 국격 있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는가?

김정탁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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