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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수지가 고소한 '댓글러' 유죄에서 무죄로,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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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배우 수지. [중앙포토]

가수 겸 배우 수지. [중앙포토]

"고소인이 연예인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런 표현이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범위에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유죄를 선고한 1심).

"연예인 등 공적 관심을 받는 인물에 대한 모욕죄를 살필 때 비연예인과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무죄를 선고한 2심).

가수 겸 배우 수지(본명 배수지·23)에 대해 '악플'을 단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에게 법원이 1심과 2심에서 정반대로 선고했다. 1심 판사는 '아무리 연예인이라도 심했다'며 유죄를, 2심 재판부는 '연예인인 점을 고려하면 심하지 않다'며 무죄를 결정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항소2부(부장 박이규)는 인터넷에서 수지를 겨냥해 '거품' '국민호텔녀' '영화폭망' '퇴물' 등의 표현을 쓴 이모(39)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지난 3일 무죄를 선고했다.

문제가 된 표현은 이씨가 2년 전 인터넷 포털사이트 기사에 단 댓글이다.

"언플(언론플레이)이 만든 거품. 그냥 국민호텔녀."
"영화폭망 퇴물 수지를 왜 설현한테 붙임? 제왑(JYP엔터테인먼트) 언플 징하네."

그가 남긴 이러한 댓글들은 고스란히 법정에 증거로 제출됐다. 앞서 수지 측 고소로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이뤄졌고 법원은 검찰의 요청대로 벌금형에 처하는 약식재판으로 넘겼지만 이씨가 불복해 정식 재판이 열렸다.

가수 겸 배우 수지. [중앙포토]

가수 겸 배우 수지. [중앙포토]

1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김유정 판사는 "이씨가 댓글에 쓴 '거품' '국민호텔녀' '영화폭망' '퇴물'등의 표현은 수지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모욕적 언사로 보기에 충분하다"며 지난 4월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모욕죄로 선고할 수 있는 벌금은 최대 200만원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이라 하더라도 절제된 표현을 사용할 것이 권장되나 윤리를 형벌이라는 최후수단을 통해 관철할 때는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다"며 이 표현들을 달리 평가했다.

'국민호텔녀'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과거 피해자에 대한 열애설 내지 스캔들이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적이 있어 이를 기초로 '국민여동생'이라는 연예업계의 홍보문구 사용을 비꼰 것이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댓글을 단 때인 2015년 초에 수지는 한 남성 연예인과 영국의 고급 호텔에 들어가는 사진이 몰래 찍혀 곤욕을 치렀다. '국민호텔녀'는 이런 상황을 빗댄 표현이었다. 앞서 수지는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인기를 얻어 '국민 첫사랑'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거품'과 '언플'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대형 연예기획사가 인터넷신문 등을 통해 특정 연예인에 대한 긍정적 기사를 유통하는 경우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퇴물'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모욕적 언사로 볼 수 있으나 연예인 직업의 특성상 '전성기는 지났다'는 생각을 과격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며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씨에 대한 무죄 선고에 불복해 지난 9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유명 연예인에게 '국민호텔녀' 등 표현을 쓰는 것이 형법상 모욕죄가 되는지는 향후 대법원 판결을 통해 결론난다.

전 국가대표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씨. [중앙포토]

전 국가대표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씨. [중앙포토]

연예인 등 유명인이 모욕·루머 등 '악플'에 대해 고소하는 경우는 꾸준히 늘고 있다. 대부분 합의나 기소유예 또는 약식기소로 종결된다. 정식 재판으로 이어진 사례는 드물다.

법원은 지난달 체조선수 손연재 씨에 대해 '돈연재' '더 X되기 전에 은퇴코스 밟네' 등의 표현이 담긴 댓글을 단 30대 남성에게 모욕죄를 인정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유명 웹툰 작가에 대해 '한남충'이라고 쓴 20대와 '강용석=쓰레기'라는 댓글을 단 40대도 각각 지난 7월과 지난해 11월 벌금 30만원을 선고받았다. 배우 송혜교 씨에 대해 스폰서 의혹을 제기하며 '새누리 할배들 스폰서로 둔 X는 좋아할 수 없지' '송탈세 뒤에 뭔가 있는 듯' 등 악플을 단 20대에게는 지난해 10월 명예훼손죄가 인정돼 벌금 300만원이 선고됐다.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이사인 정경석 변호사는 "연예인 악플 사건은 공적 인물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과 인격권 보호, 일반 인터넷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 사이에서 어디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위법성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고 말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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