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도 "질"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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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제6공화국의 출범은 우리정치사에 새로운 장을 연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6공화국은 국민적 합의에 의한 대통령직선제를 통해 탄생됐을 뿐 아니라 지난40년 우리나라헌정사외 가장 큰 숙제의 하나였던 정통성시비를 극복할 전기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1948년 정부수립이래 단명으로 끝난 장면정권을 제외하곤 역대 어느 정권도 정통성 시비를 겪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로 인해 우리정치의 패턴도 대화나 타협보다는 대립과 갈등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6공화국의 출범에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각별한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새 정부 출범 전부터 이미 화합추진위가 구성돼 국민적 과제의 하나인 갈등의 치유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이제까지 우리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지배하고있던 권위주의를 청산하려는 시도가 희미하나마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많은 국민들의 기대가 쏠리고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우리주변에서 구시대적인 정치형태나 발상을 목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야 간의 국회의원선거법 협상이다.
5공화국을 사실상 마감하는 이번 임시국회회기를 불과 하루 앞둔 28일까지도 여야의 선거법협상은 정치를 잘모르는 국민에게까지도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라는 6·29선언을 거쳐 대통령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민정당마저 「독초」이란 비판 속에 1구 1∼3인제의 중소복합선거구제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또 하루아침에 소선거구제 당론을 1구2∼3인제의 중선거구제로 둔갑시킨 민주당의 태도는 도저히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행동이다.
현행 1구2인제를 골간으로 하는 민주당의 중 선거구제가 우리정치무대에 등장하게 된 배경과 역사를 생각할 때 우리는 명분도, 이론도 내팽개치는 일부 야당의 정치형태에 놀라움을 금하기 어려운 심정이다.
1구2인제는 대표적인 유신체제의 산물이다.
유신 후 비상국무회의에서 만들어진 나눠 먹기식 동반당선의 1구2인제에 대한 그동안 국민과 야당의 비판을 생각하면 야당이 이 안을 들고 나온데서 역사의 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제5공화국 출범 과정에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양산한 정치입법에 대해 개폐투쟁을 벌여왔던 야당이 대표적 정치입법의 하나인 국회의원선거법의 골간만은 금배지를 계속 다는데 유리하다고 해서 고수하겠다고 하니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야당도 문제지만 1구 1∼3인의 야누스적 선거법을 원내안정세력확보라는 명분하에 고집하고 있는 민정당도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국가대사를 끌고 가려 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 험난한 직선제선거를 치러낸 민정당이 정정당당하게 나가지 못하고 분열된 야당을 상대로 대도시에서의 위험부담 마저 피하려는 것은 정말 안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민정당은 만년 여당의 환상을 버리고 언젠가는 야당이 될 때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한다.
중앙일보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정당의 1∼3인제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가 5·5%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론조사가 얼마나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느냐는 의문이지만 아뭏든 5·5%지지 밖에못 받은 제도에 집착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민정당이 직선제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6·29선언이 나온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오로지 국민대다수가 직선제를 원했기 때문에 그 폐단을 예측하고 감수하면서까지 직선제를 택했던 6·29선언의 정신으로 민정당은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하겠다.
여야 모두에게 강조하고싶다. 의석 한 두석을 더 얻는 것보다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 대경대도로 가야한다는 것을.
비단 선거법뿐만이 아니다. 우리경제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되고 있듯이 이제는 우리정치도 모든 면에서 양보다는 질, 변칙보다는 원칙에서 생각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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