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도 안 키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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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배달우유 1개를 팔면 얼마나 남습니까.』
『2백㎖ 종이포장우유를 1백50원에 들여와 1백70원에 배달하니까 개당 20원정도 남습니다.』
『제조일자를 고친 것이 3백여 개니 고작 6천원 정도 밖에 이득보지 못한 거죠?』
『‥‥‥.』
『그래, 6천원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에게 상한 우유를 배달하단 말입니까?』
형사가 흥분했다. 책상을 내리치려는 듯 손바닥을 치켜들었다가 아차 싶었던지 멈칫하고는 주위를 한바퀴 둘러본 뒤 다시 신문을 계속한다.
26일 낮 서울 청량리 경찰서 조사계.
보존기간(4일)이 지난 재고우유의 제조날짜를 고쳐 가정에 배달해온 우유대리점주인 이모씨(32·서울전농동)가 담당형사 앞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이씨의 날짜 변조수법은 포장지에 압인한 제조일자「3」을 볼펜 끝으로 꼭꼭 눌러「8」로 둔감 시키는 식의 간단하고도 치졸한 방법. 이씨는「3」자가「8」자로 바뀌는 순간마다 무고한 시민의 생명이 오락가락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지난달 중순 우리 집에 배달된 우유를 마신 손녀(7)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나뒹굴어요. 토하게 하고 약을 사 먹이고… 대여섯 시간이나 소동을 벌인 끝에 겨우 회복됐어요.』
참고인으로 나온 피해자 서모씨(65·여·서울상월곡동)는 이씨를 가리키며『너는 자식도 안 키우냐』고 일갈했다.
이씨는 변질 우유를 마신 피해자들이 우유대금을 내지 않아 수금이 안 되는데도 엉뚱하게 배달원들을「공금횡령」으로 고소하려다 격분한·배달원들이 거꾸로 고발하는 바람에 범행이 들통났다. 푼 돈 앞에서 철없는 어린이들의「생명위험」조차 아랑곳 않는 인심, 그 끝은 과연 어디일까.

<허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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