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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파이퍼, 조니 뎁… 특급 배우들 미친 존재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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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호 30면

REVIEW & PREVIEW 

이 영화를 즐기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유명해도 너무 유명한 원작이다.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애거서 크리스티(1890~1976)가 1934년 출간한 원작 소설은 탐정 에르큘 포와로가 나오는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다. 그 뿐인가. 1974년과 2001년에 영화로 제작됐고, 80년대 이후 수차례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이야기. 운 좋게(?) 원작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면, 영화는 99.99% 재밌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대략의 줄거리와 범인을 알고 있는 상태라면 긴장감은 확연히 줄어든다. 아마도 이는 영화 제작진들에게도 큰 고민이었을 터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감독: 케네스 브래너 #배우: 케네스 브래너, 미셸 파이퍼 #페넬로페 크루즈, 조니 뎁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1934년 겨울, 예루살렘에서 사건 하나를 해결한 천재 탐정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는 런던으로 빨리 와 달라는 전갈을 받고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출발하는 초호화 열차 오리엔트 특급에 탑승한다. 하지만 열차는 폭설로 유고슬라비아 외딴 지역에 멈춰 선다. 그날 밤 침대 칸에 있던 승객 중 한 명인 미국인 사업가 라쳇(조니 뎁)이 칼에 찔려 살해된다. 라쳇은 5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끔찍한 아동 납치 살해사건의 범인. 포와로는 열차에 타고 있던 기관사와 승객 등 용의자 13명을 조사하지만, 이들의 알리바이는 완벽해 보인다.

이 정도의 줄거리를 듣고 범인을 떠올렸다면, 관심을 돌릴 곳은 화려한 출연진이다. 혼자서 영화 전체를 책임질 만한 이름난 배우들이 작은 배역을 기꺼이 맡아 존재감을 내뿜는다. 미셸 파이퍼, 조니 뎁, 페넬로페 크루즈, 주디 덴치, 윌렘 대포에다가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주인공 데이지 리들리가 합세했다. 거기에 영국 로열발레단 최연소 수석 무용수였던 세르게이 폴루닌도 나온다. 누구보다 매력적인 건 감독이자 주연 탐정 포와로를 연기한 케네스 브래너다. 대칭과 질서를 사랑하고, 원작에 “영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멋진 콧수염”이라고 묘사된 수염을 지닌 포와로는 영화 속에서 냉철하면서도 귀염성 있는 인물로 되살아난다.

원작의 팬이라면 상상만 했던 80여 년 전 초호화 열차 내 풍경을 세심하게 되살린 디테일에 감탄할 만 하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아르데코 스타일의 식기, 우아한 1930년대풍 의상이 눈길을 끈다. 폭설에 갇힌 열차를 보여주기 위해 실제 규모의 기차를 제작했고, 10m 높이의 설산 세트를 만들었다. 전 세계에 4대밖에 없는 65㎜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대자연은 웅장하다. 심지어 기차 세트는 실제로 움직이게 제작됐고, 뉴질랜드 산악 지대를 달리며 촬영한 영상을 열차 양쪽 화면에서 재생해 배우들의 몰입을 도왔다고 한다.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유고슬라비아, 발칸 반도를 거쳐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 런던까지 가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는 실제로 1883년부터 2009년까지 운행한 유럽 횡단 열차였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열차 여행을 좋아했고, 그 안의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즐겼다고 한다. “난 미국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혀 쓸모없는 사람들이니까요”, “이탈리아인은 한번 찌르는 게 아니라 몇 번이고 찔러 댑니다” 등 당대 유럽인들의 편견을 드러내는 원작의 대사도 영화에 그대로 등장한다. 죽은 라쳇이 저지른 아동 납치 살해사건 역시 1930년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했다고 전해진다.

아쉬운 것은 결말이다. 원작자는 이 이야기에서 ‘죽어 마땅한 인간을 단죄 했을 때 그것은 죄인가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사건의 실상을 알아버린 포와로의 선택을 대사 하나로 담백하게 보여주며 소설을 끝맺는다. 읽는 이로 하여금 여운과 함께 사건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깔끔한 결말이다. 반면 영화는 구구절절 설명이 길다. 포와로가 “인간의 영혼에 난 균열”과 “옳고 그름 사이에 있는 것”에 대해 연설을 늘어놓는 장면은 친절하지만 지루하다.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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