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홍석경의 한류탐사

세계로 간 한국의 '휴머니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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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국내외에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 ‘부산행’과 미국의 ABC방송이 리메이크해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고 있는 한국 드라마 ‘굿닥터’는 한류의 새로운 행보에 대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영화 대부분은 작가 영화이지 대중적 장르로 주목을 끈 경우는 극소수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 정도가 여기에 속할까. ‘부산행’은 서구에 익숙하나 한국 영화계에는 생소한 좀비 장르라서, 국내외에서의 동시 성공은 문화물의 수입과 가공, 혼종적 창조에 대해 여러 가지 화두를 제공한다. ‘굿닥터’도 한국 텔레비전에서 경험이 짧은 미국식 메디컬 장르를 한국 드라마 전통에서 재창조한 것인데, 이것을 다시 미국화했음에도 드러나는 한국식 터치에 미국 시청자들이 호응한 것이다.

한류탐사 11/25

한류탐사 11/25

해외의 반응을 종합해 보면 혼종적 재창조의 키워드는 한국식 ‘휴머니즘’이다. ‘부산행’에서 사람들은 좀비를 공격하기보다는 도망가고, 무차별적 총격이 아니라 맨주먹과 방망이로 좁은 기차 공간에서 사투를 벌인다. 이런 장면은 민간의 총기 사용이 불가능한 한국의 관객들에게는 당연하지만, 외국 수용자의 눈에는 신선하고 인간적이다. 가족을 구한다며 결국 세계를 구하려고 싸우는 미국의 영웅들과 달리 ‘부산행’의 인물들은 가족과 연인, 임산부와 어린이를 위해 싸우고 울며 희생한다. ‘굿닥터’는 어려운 의학 문제를 다루는 메디컬 드라마의 세계에 자폐증 의사의 병원사회 내 수용을 둘러싼 갈등과 연대의 감동을 더했다. 한국산 콘텐트가 지닌 이러한 특성을 해외 관객들은 ‘휴머니즘’이 넘친다고 말한다. 동아시아에서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적인 인간관계의 ‘정’을 재발견하게 해줌으로써 정체성과 소속감을 자극하다는 연구들과 비교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히어로가 아니라 일반인, 또는 ‘괴물’이나 ‘굿닥터’에서처럼 소수자라는 점이 휴머니즘을 더해 준다. 매우 ‘인간적인’ 이 주인공들이 수퍼 히어로나 반영웅적 개인에게 열광하는 미국의 수용자와, 감정 자극을 싫어하는 유럽의 관객과 비평가 모두에게 호평을 받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들이 이해하는 ‘휴머니즘’은 한국적 특수성이라기보다는 한국이 해석하는 보편성에 가깝기에 두 작품의 성공은 의미가 크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