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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가계부채 1400조원, 동결 수준의 관리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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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9월 말 현재 가계부채가 1419조원을 기록했다. 석 달 새 31조2000억원, 1년 전보다는 120조원이나 늘었다.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의 세 배에 달한다. 규모와 속도 모두 비정상적이다. 1400조원은 어마어마한 돈이다. 1인당 500잔씩 마신다는 커피산업의 연매출이 10조원이다. 100만 명이 먹고산다는 프랜차이즈 산업의 연매출은 100조원이다. ‘수퍼예산’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1년 정부 예산이 400조원 남짓이다. 정부 예산 3년치 반을 쏟아부어야 가계부채를 갚을 수 있다.

가계부채의 위험성은 국내외 기관들이 오래전부터 지적해 왔다. 성장률을 뛰어넘는 가계부채 증가는 잠재적인 거품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역대 정부는 내수와 부동산을 반짝 부양하려는 욕심에 가계부채의 위험성에 눈을 감아 왔다. 이 결과 어느새 가계 빚 부담에 가처분소득이 줄고 소비가 위축되는 ‘가계부채의 역설’이 현실화하게 됐다. 더구나 미국이 꾸준히 금리를 올리면서 한국은행도 연내 기준금리를 올릴 게 확실시되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집값도 조정을 겪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리와 자산 양면의 충격이 가계 체력을 급속히 악화시켜 시스템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방지하려면 가계부채 정책의 틀을 전환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과도하게 늘어난 가계부채를 그냥 둔 채로 증가율만 성장률 수준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은 시한폭탄을 계속 안고 가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 가계부채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는 동결 수준의 관리가 필요해졌다. 가계소득이 장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게끔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키는 정부의 현명한 정책도 절실하다. 현 정부는 야당 시절 가계부채에 대해 매우 비판적 입장을 고수해 왔다. 여당이 된 지금 그 문제의식을 어떻게 현실화할지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