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봄」과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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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 동안 얼마나 기다리던 봄인가. 새 학기 개강을 한달 남짓 앞둔 이 엄동의 대학 캠퍼스에 다른 어느 곳보다도 먼저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 대학들이 학원자율화의 실마리를 풀어줄 학칙개정작업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21일 현행 학칙내용 중 비민주적이고 비교육적인 것으로 지적돼온 학사제명조항 및 총장직권에 의한 제명조항을 폐지하고 학생들의 정치활동금지규정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학칙개정안을 확정, 문교부의 승인을 거쳐 새 학기부터 시행키로 했다.
주지하다시피 각 대학의 현행학칙은 유신 때인 지난 73년 문교부가 각 대학에 일률적으로 시달했던 준칙에 의해 그야말로 「타율」로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이 준칙 중 학생활동에 관한 규정은 규제 일변도의 획일적이고 비민주적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어 당시에도 적잖은 논란이 있었다.
그 대표적 독소조항이 바로 시위농성 등 시국사태 관련학생을 총·학장이 교무회의의 동의 없이도 독단적으로 제적시킬 수 있도록 한 규정이었다. 따라서 이 규정은 교육적 목적은 물론 학교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문교부 등 외부기관의 「요구」와 압력에 의해 문제학생들을 강제 퇴학시킬 수 있도록 악용돼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어떤 현상이 빚어졌는가. 지난해 10월 문교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제5공화국 출범이후 지난 80년부터 86년까지 7년간 전국 대학에서 제적된 총 학생 수는 무려 12만4천6백 명으로 밝혀졌다. 물론 여기에는 졸업정원제에 의한 강제탈락· 미등록 제적생수가 포함되었지만, 대부분 시국사태 관련자들이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는 그 동안 귀가 따갑도록 헌법에도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주장해왔다. 또한 문교부가 광범위하게 관장하고 있는 업무들을 과감하게 대학당국에 돌려주고, 총·학장의 자율적 권한을 확대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그 동안 대학사회에 대한 정부의 획일적인 통제가 강화되면 될수록 교수의 학생들에 대한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것을 보아왔다. 언젠가 서울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사람가운데 「교수」를 든 학생은 2.5%밖에 안 된다는 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지식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영향을 미쳐야할 교수의 권위를 이처럼 「격하」시킨 것도 따지고 보면 책임만 강조했지 권한을 주지 않은데 기인한다.
따라서 오늘날 황폐화된 대학을 재건하는 길은 행정적 획일주의를 지양하고 총장 책임아래 교수회의를 활성화시킴으로써 대학의 질적 관리는 물론 재정·인사·행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데 그 요체가 있다.
그러나 자율에는 거기에 따른 책임 또한 무겁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각 대학의 학칙개정을 계기로 교수와 학생이 하나가 되어 한국의 내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른바 대학인의 「대학정신회복」도 기필코 따라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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