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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베는 쫓겨났지만… 권력 세습 성공한 아프리카 왕조 국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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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베 대통이 사임을 발표한 21일 밤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서 시민들이 축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무가베 대통이 사임을 발표한 21일 밤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서 시민들이 축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의 37년 독재가 마침내 종식됐다.

버티던 짐바브웨 무가베 마침내 사임 발표 #부인에게 권력 물려주려다 역풍 맞았지만 #아프리카엔 세습 성공한 '왕조 국가' 여럿

BBC 등 외신에 따르면 21일(현지시간) 무가베는 의회에 제출안 사직서에서 “나, 로버트 가브리엘 무가베는 헌법 96조항에 따라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또 “순조로운 권력 이양을 위해 즉각적이고 자발적으로 사퇴한다”고 덧붙였다.

제이컵 무덴다 짐바브웨 의회 의장이 이날 오후 5시50분 국영TV로 중계된 연설을 통해 무가베의 사임을 공식 발표하자 짐바브웨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지난 6일 무가베는 부인인 그레이스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위해 유력 후계자였던 에머슨 음난가그와를 경질했다. 이는 군부의 반발을 샀고 15일엔 쿠데타가 발발했다.
무가베는 약 1주일간 퇴진을 거부하며 버텼지만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전선-애국동맹(ZANU-PF) 주도로 탄핵 절차가 개시되자 백기를 들었다.

BBC는 무가베 대통령이 지난 6일 전격 해임했던 에머슨 음난가그와 부통령이 과도정부에서 권력을 행사한다고 보도했다. 정보당국 수장 등을 지내며 무가베 권력을 수호해 온 그는 짐바브웨의 기득권층이며 수구 세력인 군과 해방전 참전군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짐바브웨가 독재자를 몰아내고 또다른 독재자를 세웠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제 전세계는 짐바브웨가 아프리타의 다른 국가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짐바브웨 못지 않은 독재국가가 수두록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파운데이션(Human Rights Foundation)’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의 54개국 중 민주국가는 14개국 뿐이다. 19개 국가는 절대 독재, 나머지도 반민주적 행위에 의해 선거가 훼손되곤 하는 전체주의 국가로 분류된다.

특히 절대독재 국가들 중엔 무가베가 꿈꿨으나 이루지 못한 '권력 세습'에까지 성공해 대대로 권력을 누리는 일가도 있다. BBC는 권력 세습을 완성하거나, 앞두고 있는 아프리카의 국가들을 ‘아프리카 왕조(Dynasty)’라고 칭했다.
다음은 대를 이은 독재로 악명 높은 왕조 국가의 면면이다.

아프리카 최장수 왕조 국가, 토고  

포르 냐싱베 현 토고 대통령(오른쪽)과 그의 아버지인 냐싱베 에야데마 전 대통령.

포르 냐싱베 현 토고 대통령(오른쪽)과 그의 아버지인 냐싱베 에야데마 전 대통령.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 연안의 토고는 아프리카 최장수 ‘왕조 국가’다. 에야데마 일가가 지난 50년을 통치해 왔다.
1967년 무혈 쿠데타로 집권한 냐싱베 에야데마가 사망한 뒤 그 아들인 포르 냐싱베가 권력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통치하고 있다.

에야데마 시절부터 토고는 강력한 독재국가였다. 그가 창당한 ‘토고국민대회(Rally of the Togolese People)’는 90년대 초까지 토고의 유일한 합법 정당이었으며, 다당제가 도입된 후에도  집권당 지위를 넘겨준 적이 없다.

72년 국민투표를 통해 7년 임기의 대통령에 당선된 에야데마는 79년과 86년 단독 후보로 출마해 권력을 이어갔다.
그러나 부정부패와 인권 탄압을 저지른 그의 권력은 끊임없이 도전받았다. 암살 위기를 수차례 넘겼고, 74년엔 비행기 사고를 당하고도 불사조처럼 살아남았다. 잔여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2003년엔 하야를 요구하는 강한 압력에도 직면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2003년 헌법을 바꿨다. 연임 제한을 폐지하면서 대통령 입후보 연령 제한을 45세에서 35세로 낮췄다. 당시 37세였던 아들, 포르 냐싱베(51)에게 권력을 세습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일찌감치 에야데마는 아들의 권력 기반을 다져줬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아들을 자신의 재정 고문관에 앉혔고, 그가 36세에 국회의원이 되어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입한 뒤엔 통신장관·광산장관 등에 기용했다.

에야데마는 2005년 69세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토고엔 비상사태가 선포됐고, 포르 냐싱베는 군부의 지지를 받아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가 비난하고 민주화를 요구했다. 그는 3주 만에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곧바로 선거를 치러 대통령에 당선됐다. 야당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시위를 벌였지만, 포르 냐싱베는 이를 무력 진압했다.

2015년 3선에 성공한 그는 13년째 권력을 유지 중이다. 포르 냐싱베는 아직 51세에 불과해 아버지를 뛰어넘는 장기집권 독재자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부자 세습 눈앞에 둔 적도기니

적도기니 응게마 대통령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그의 아들 테오도로 응게마 오비앙. [AFP=연합뉴스]

적도기니 응게마 대통령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그의 아들 테오도로 응게마 오비앙. [AFP=연합뉴스]

적도기니의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75) 대통령은 79년 유혈 쿠데타로 폭정을 휘두른 프란시스코 마시아스를 축출해 집권했다.

새 출발을 선언하며 취임했지만 응게마는 아프리카의 가장 지독한 최장기 독재자로 전락했다. 의회는 집권당인 적도기니 민주당과 그 추종 세력이 장악했고, 반대파 정치인들은 추방·투옥·살해됐다.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Human Rights Watch)’는 “응게마는 독재를 통해 국민을 희생시키고, 석유 산업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재 국가의 법칙을 착실히 따르는 응게마 정권은 숭배도 강요한다. 2003년 국영 라디오 방송은 그를 “절대자와 영원한 계약을 맺은 전지전능한 국가의 신”이라 불렀고, 스스로도 ‘엘 제페(El Jefe·보스)'라 칭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권좌를 지킬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아들을 유력한 후계자로 밀고 있다. 현재 48세인 테오도르 응게마 오비앙이다.
초호화 생활로 이름을 떨치는 그는 곳곳에서 사고를 치는 문제아다.
지난 10월엔 프랑스 법원에 횡령 혐의로 기소돼 2900만 달러(약 316억원) 상당의 고급 맨션을 포함한 자산이 동결됐다. 그는 프랑스에서 수퍼카 18대, 보석과 예술품 등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전해졌다.

지난 11월엔 스위스 검찰이 그의 수퍼카 11대를 압류했다. 석유로 벌어들인 국부(國富)를 횡령해 전용기와 마이클 잭슨의 유품 등을 구매한 혐의였다.
물론 테오도르 응게마 오비앙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우간다, 부자 세습이냐 부부 세습이냐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 뉴욕 유엔본부에서 만난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오른쪽). [중앙포토]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 뉴욕 유엔본부에서 만난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오른쪽). [중앙포토]

31년째 우간다를 통치하고 있는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도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최악의 독재자 이디 아민에 대항하고, 86년 취임 뒤엔 동아시아 경제발전 모델을 채택해 고속 성장을 이뤘던 그는 한때 ‘아프리카의 빅맨(Big Man)’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권위적 지도자로 돌변한 뒤 철권을 휘두르고 있다.

2015년 5번째 임기를 시작한 뒤엔 영구집권 플랜에 돌입했다. 우간다 집권당인 국민저항운동(NRM)이 주도하는 개헌 추진이 그것이다. 75세 이상은 대통령에 입후보할 수 없다는 헌법을 바꾸려는 것이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무세베니는 차기 대선이 치러지는 2021년엔 77세가 되어 대권에 도전할 수 없다.

세습도 준비하고 있다. 올 초 무세베니는 큰아들인 무후지 카이네루가바(41)를 대통령 특별 자문으로 임명했다.
카이네루가바는 2000년 영국 왕립 군사학교를 졸업한 뒤 우간다 군에서 초고속으로 진급했다. 지난해엔 준장에서 소장으로 또 한 단계 뛰어올랐다.

한편에선 무세베니의 부인인 자넷 무세베니도 대권 야망을 품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2009년부터 정부에서 일해 온 그는 현재 교육·스포츠 장관을 맡고 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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