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영장이 사라졌다|6·29선언 후 신청·발부 1건도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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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인권유린」으로 시비의 대상이 돼온 비밀영장이 사라졌다.
비밀영장은 수사기밀유지·공범체포 등 수사기관의 편의를 위해 법원이 피의자의 인적사항·혐의사실 등을 구속영장 발부대장에 기록하지 않고 영장발부 사실 자체를 보안 유지하는 제도로 법적 근거 없이 유신직후 간첩사건수사를 이유로 시작돼 한때 일반 공안사범·시국사범들에게까지 남용되면서 고문·인권유린 시비를 불러 일으켜오다 6·29선언이후 자취를 감춰 1건도 발부된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재야 법조계에서는 비밀영장의 잦은 발부는 사법권 독립이나 사법부 신뢰에 먹칠을 해왔다고 지적하고 민주화의 길목에서 비밀영장이 사라진 것은 바람직하며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비밀영장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폐단·사례=비밀영장이 발부되면 피의자가 구속되더라도 가족들이 행방을 몰라 애를 태우기 일쑤고 장기구금·고문시비 등 인권유린 사례가 많았다.
이 때문에 재야 법조계에서는 비밀영장이 발부되면 구속 적부심 청구는 물론 변호인 선임·반대증거수집 등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에도 어려움이 많아 폐지를 주장했던 것.
더구나 비밀영장 대상이 시국사건 관련 대학생들이나 수사상 비밀을 요하는 고위 공무원들의 독직사건에까지 남용돼 76년7월에는 한달 동안 30여건이나 발부되기도 했었다.
86년5월 서울노동운동연합 김문수씨(36·한일공업 해고근로자·서울대 경영대제적)등 「서노련」관련자 14명이 무더기 비밀영장으로 구속된 후 고문시비가 일었으며 86년7월에는 서울시경이「민족민주교육 쟁취투쟁위원회 사건」관련 교사 7명을 비밀영장으로 구속, 가족들은 이들이 연행된 후 사건 발표 때까지 행방을 몰라 실종신고를 내는 등 소동을 빚기도 했다.
또 85년9월 서울대 민추위 사건 배후인물로 지목돼 비밀영장으로 구속된 민청련의장 김근태씨(41)는 수사과정에서 심한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 현재 국가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까지 계류중이다.
◇관계자의 말=비밀영장을 전담하고 있는 서울형사지법 손진곤 부장판사는『비밀영장은 파행적 국가운영 행태 하에서 비롯된 비정상적인 사법운용의 한 단면이었다』고 말하고 6·29선언이후 단 l건도 발부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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