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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공고생들이 후배 신입생 모으려 피켓 들고 길 나선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0일 전남 해남공고 학생들이 해남군청 앞 사거리에서 손에 피켓을 들고 신입생 모집을 위한 홍보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0일 전남 해남공고 학생들이 해남군청 앞 사거리에서 손에 피켓을 들고 신입생 모집을 위한 홍보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해남공고가 살아야 해남군이 삽니다. 내 고장에 있는 학교에 (자녀를) 보내 지역 경제를 살립시다.”

전남 해남공고, 학생들이 신입생 유치 나서 '눈길' #'일반고 선호에 자녀 인생 그늘져' 등 재치 만점 #피켓 홍보에도 개교 첫 미달사태…43% 못 채워 #전남, 내년 특성화고 47곳 중 24곳 신입생 '미달' #학령인구 급감속 고교 입학생보다 중3 많아진 탓 #농촌 낀 전국 일반·특성화고도 '역전현상' 심화

지난 20일 오후 전남 해남군 해남군청 앞 사거리. 교복을 입은 고교생 20여 명이 지나가던 행인들을 향해 학교를 홍보하는 구호들을 쏟아냈다. 내년에 특성화고에 입학할 신입생을 모집하는 기간임을 알리기 위해 길거리로 나선 해남공고 재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자기 학교의 특성과 지역 사회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피켓을 들고 자신들이 다니는 학교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피켓에는 ‘쓸데 없는 부모 체면, 자녀인생 그늘진다’ ‘(서울 갈)똑똑한 자식보다 (고향에서)함께 사는 자식이 효자’ ‘해남공고가 내 고장의 미래다’ 등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학생들을 향해 “추운 날씨에 고생들이 많다” “해남공고 파이팅” 등을 외치며 격려했다.

지난 20일 전남 해남공고 학생들이 해남군청 앞 사거리에서 손에 피켓을 들고 신입생 모집을 위한 홍보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0일 전남 해남공고 학생들이 해남군청 앞 사거리에서 손에 피켓을 들고 신입생 모집을 위한 홍보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학령인구 감소와 이농 현상이 지속되면서 한 농촌 지역 특성화고 학생들이 직접 후배들 모집에 나섰다.
지역에서 중3 졸업생 수가 고등학교 모집 인원보다 적은 ‘역전 현상’이 커지면서 신입생 확보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기존 대학이나 대학생들이 아닌 고교생들이 자발적으로 신입생 유치를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은 전남에서 해남공고가 처음이다.

해남공고는 지난 10월부터 전남 강진·완도·나주 등 인근 지역 중3 학생을 대상으로 입시설명회를 열었다. 내년에 해남공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학교 졸업예정자가 신입생 모집 인원(240명)을 크게 밑도는 190명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서다.

이 학교 재학생들은 신입생 원서접수 기간이 다가오자 이색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자신들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해남읍내와 군청 앞 등지에서 학교 홍보를 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8일부터 이날까지 닷새 걸쳐 진행된 거리 홍보에는 교사 10여 명도 동참했다. 지역민들에게 학교가 처한 어려움을 알리고 지역 학부모들에게 특성화고 진학을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20일 전남 해남공고 학생들이 해남군청 앞 사거리에서 손에 피켓을 들고 신입생 모집 홍보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0일 전남 해남공고 학생들이 해남군청 앞 사거리에서 손에 피켓을 들고 신입생 모집 홍보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학생들과 교사들은 영광공고와 함께 전남 지역에서 2곳뿐인 ‘거점형 특성화고(공업계열)’라는 점을 강조하며 신입생 유치 활동을 했다. 인근 학교와의 통폐합을 통해 선정된 거점형 특성화고는 학교 건물 증·개축과 폐교 학생의 교통비·기숙사비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2015년 전남도교육청의 ‘거점형 특성화고’에 선정된 이후 학교 건물을 대대적으로 증·개축하고 있다”는 점도 학부모들에게 부각했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남공고는 1993년 4월 개교 이후 올해 처음으로 신입생 미달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20일 특성화고에 대한 신입생 접수를 마감한 결과 137명만이 원서를 낸 것이다. 당초 학교 측이 잡은 입학정원이 240명이었다는 점에서 전체 신입생의 43%를 채우지 못했다.

학교 측은 당초 특성화고 진학을 염두에 뒀던 학생들까지 대거 일반고 쪽으로 진학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해남 지역 중3 학생들이 인근 장성·담양 등지에 있는 고교로 빠져나간 것도 신입생을 채우지 못한 요인이 됐다.
2학년 김수민(18)군은 “학교가 문을 연 이후 처음으로 미달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는 말에 친구들과 열심히 홍보했는데 결국 정원을 채우지 못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전남 해남공고 김상호 교장(왼쪽)과 김수민 학생이 학교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0일 전남 해남공고 김상호 교장(왼쪽)과 김수민 학생이 학교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학교 측은 이번 신입생 모집 결과를 토대로 학급 규모 조정 등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현재 해남공고는 1학년 218명, 2학년 243명, 3학년 214명이 재학 중이다. 675명의 재학생이 건축과와 기계과·전기과·전자과·화공과 등 5개 과에서 이론과 실기를 배우고 있지만, 학사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이런 상황은 다른 특성화 학교들도 비슷하다. 전남도교육청은 21일 "전남 지역 특성화고 원서접수를 마감한 결과 총 47개 특성화고 가운데 24개 학교가 신입생 모집 정원에 미달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입시 경쟁률은 전체 모집 정원 5128명에 4191명이 지원해 0.83대 1로 지난해(1.02대 1)보다 크게 낮아졌다.
광주광역시도 11개 특성화고 중 5개가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광주의 특성화고들은 전체 모집 정원 2730명에 2623명이 지원해 0.96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전남 해남공고 기계과 학생들이 학교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 해남공고]

전남 해남공고 기계과 학생들이 학교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 해남공고]

지방 고교들의 신입생 부족 현상은 특성화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농촌 학교들의 경우 특성화고는 물론이고 일반고까지 미달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전남의 경우 내년 중학교 졸업 예정자가 1만6770명으로 고교 신입생 정원(1만9154명)보다 2384명이 적다. 또 향후 전남의 중3 졸업 예정자는 2019학년도 1만6483명, 2020학년도 1만5865명, 2021학년도 1만4539명 등으로 꾸준히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런 현상은 농촌을 끼고 있는 전국의 다른 지자체들도 비슷하다. 지역별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전남 외에도 경북(입학정원 2562명)과 전북(2540명), 충남(1489명), 강원(1069명) 등도 중3 학생들이 내년 고등학교 입학정원보다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20일 전남 해남공고 학생들이 해남군청 앞 사거리에서 손에 피켓을 들고 신입생 모집 활동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20일 전남 해남공고 학생들이 해남군청 앞 사거리에서 손에 피켓을 들고 신입생 모집 활동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김상호(57) 해남공고 교장은 “신입생이 당초 예상을 크게 밑돌면서 학급 감축 등이 불가피해졌다. 학부모들의 일반고 및 도시학교 선호현상이 계속되면서 실력을 갖춘 특성화 학교들까지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해남=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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