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소동 강 건너 불 보듯 배명복 <경제부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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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쇠고기 수입개방과 관련한 정부의 최종방침이 아직도 확정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18일에도 축산 농민 3천여명이 서울 여의도 광장에 모여 격렬한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를 벌였다.
전국 각지에서 계속되고 있는 농민들의 시위를 지켜보면서 쇠고기 수입개방에 얽힌 이해 당사자가 과연 누구인지 곰곰 생각하게 된다.
농민들이 오로지 정부만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정책결정의 담당자가 정부인만큼 당연하달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 정부는「이해조정자」일뿐 이해 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쇠고기 수입 개방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는 축산농민과 또 누구인가. 그건 다름 아닌 수출업체들을 포함한 재계일 것이다.
이 문제가 끝내 타결이 안돼 미국의 경고대로 301조 보복조치를 당하게될 경우 자동차. 전자·섬유제품등 주종수출상품의 대미수출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재계는 뒷짐을 진채 침묵하고 있다. 남의 일인양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면 좀 지나친 말일까.
이 문제는 결코 정부와 농민간의 씨름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이해 당사자인 재계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
패자경전경련회장은 얼마전 국민경제 차원에서 쇠고기 수입 개방은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밝힌바 있다.
이것이 단지 구 회장 개인의 입장표명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재계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대 농민 설득으로 이어져야 한다.
『도시로, 공장으로 몰려드는 여러분 자녀들의 일자리를 위해서도 쇠고기 수입 개방은 불가피하다』고 왜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가.
그러나 재계의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말」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행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컨대 대미수출이 많은 대기업 순으로 일정액을 모아 쇠고기 수입 개방에 따른 축산농가의 피해를 보전해주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보고싶은 것은 재계의 이 같은 성숙된 모습이다. 이것이야말로 전경련이 줄기차게 부르짖어온 민간주도경제에 걸 맞는 재계의 참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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