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전쟁과 휴전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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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6강전> ●커제 9단 ○안성준 8단

7보(109~121)=우상 패싸움과 좌변 접전이 일단락되자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왔다. 안성준 8단은 숨을 고르고 반상을 천천히 훑어본다. 현재 가장 여백이 많은 곳은 우변 쪽이다. 당장 급하게 둘 곳이 없다면, 넓은 공간부터 선점하는 게 바둑의 순리다. 안 9단은 110부터 116까지 우하 영토에 진지(陣地)를 구축했다.

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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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하가 일단락되자 반상엔 다시 찰나의 여유가 찾아들었다. 이처럼 바둑에는 저마다의 호흡과 리듬이 존재한다. 돌들이 부딪치는 치열한 지역전이 펼쳐지다가도, 상황이 일단락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휴전이 찾아온다. 휴전 뒤에는 반드시 또 다른 접전이 온다. 전쟁과 휴전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반상은 흑백의 돌들로 빼곡히 채워진다.

이제 선수(先手)를 잡은 커제 9단이 흐름을 주도할 차례다. 커제 9단의 다음 수는 어디로 향할까. 지금 커제 9단의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공격 혹은 수비'로 요약된다. 만약 커제 9단이 수비를 택한다면 '참고도' 흑1로 뛰어 하변 집을 키울 수 있다. 그런데 이럴 경우, 백2~8로 중앙에 새하얀 철벽이 생기는 게 기분 나쁘다.

참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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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제 9단은 공격을 선택했다. 119로 젖힌 다음, 121로 적진에 침투했다. 안 8단은 어쩔 수 없이 반갑지 않은 손님을 맞이할 채비를 해야 한다. 다시 반상의 호흡이 가빠진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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