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떠나려니 장애자들이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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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조선왕조 마지막 세자빈이었던「줄리아」여사(58)가 오는 봄 만 25년의 한국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떠난다고 영친왕 이은씨의 외아들 구씨(57) 와 결혼한지 5년만인 63년 부군과 함께 한국에 온 그는. 82년 이혼으로 악선재를 떠난 후에도 신체 부자유 소녀들과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며 한국에서 살아왔다.
『이제는 고향에 돌아가 좀 쉬고싶습니다. 그동안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너무 지쳤어요.우선 양녀 「유지니아」 (한국명 은숙·28)가 결혼해 살고있는 하와이로 갈 생각입니다. 자유롭게 옛 친구도 만나고, 바닷가도 거닐고, 슈퍼마킷도 다니며 앞날을 생각해 봐야지요. 나이 탓 인가봐요』
「줄리아」 여사가 악선재를 떠날 때 아파트를 빌 약간의 돈과 자신이 쓰던 몇개의 가재도구만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반포 자신의 아파트를 작업장 삼아6명의 신체 부자유소녀와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며 살아온 지난 6년간의 생활이 경제적·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것 같다.
『집도 없지요, 차도 없지요, 저는 이 시멘트 병풍속에 둘러싸인 아파트 안에 붙잡혀 옴싹달싹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지난해 제가 살고있는 이 아파트 뒤쪽 숲이 깍여 나가고, 아파트가 생긴 뒤에는 너무 답답해 살수가 없어졌어요』 실내장식과 의상디자인이 전공인 「줄리아」 여사는 악선재 시절부터 시어머니였던 이방자 여사가 이끌어온 지체 부자유 청소년 직업훈련기관 명 회원의 일을 도와왔다. 현재는 2명의 농아, 2명의 지체부자유군, 2명의 정상적인 소녀 등 총6명을 데리고 염색·자수·길딤음을 이용한 독특한 디자인과 색감의 테이블보·쿠션·의류 등을 만들어 하이야트 호텔 자신의 가계에서 팔고있다.
82년 악선재를 떠난 후 얼마간은 시어머니였던 이방자 여사와 어느정도 교류가 있었으나85년 이후부터는 이 왕가와 일체의 교류가 끊어졌다고 한다. 그 자신이 접촉을 하려해도 번번이 무시당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 있는 전남편 이구 씨의 소식을 풍문으로만 듣고 있으나 무언가 정서적으로비 정상적인 상태인 것 같아 크게 슬픔을 느끼게 된다며 「줄리아」여사는 눈시울을 붉힌다.
10일하오4시 반포 그의 아파트에서는 새해파티가 열렸다. 매년 연말이나 연초 그가 함께 일하는 소녀들, 과거에 함께 일했던 소녀들과 가족을 모두 불러 여는 파티인데 구운 칠면조고기를 비롯, 볶음밥·김치·쇠고기스튜·샐러드·치즈와 햄 등 푸짐한 요리가 가득 준비되어 있었다.
악선재 시절부터 그와 함께 일해온 송순이씨 (40) 는 휠체어를 탄 그의 정박아 아들 요한(11), 딸 효신(13)과 함께왔다. 함께 일하다 3년 전 결혼한 지체 부자유자인 조경미씨(30)가 그의 남편, 2세 짜리 아들과 함께 나타나자 「줄리아」 여사는 『경미, 어서와』 하고 반기며 끌어안는다. 자신의 소생이 없는 「줄리아」여사를 소녀들은『큰 엄마』, 그들의 아이들은 『할머니』 라 부르며 따른다.
이날 파티에 온 손님은 어른·아이 총30여명. 「줄리아」 여사는 이번이 그가 여는 마지막파티가 될 것 같아 이틀 전부터 음식장만에 정성을 쏟았다. 주변이 정리되는 대로 『새로맞은 용해에는 내 인생에 새로운 변화를 갖겠다』 는 결심대로 미국으로 떠날 생각이다.
그러나 끝까지 마음 쓰이는 것은 그가 함께 일하던 소녀들의 문제다. 그가 없어도 가계를 계속하는 방법을 강구중이나 뚜렷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푹 쉰 뒤에는 나의 이야기를 쓰고싶습니다. 그것은 이 왕가 여인으로서의 삶과 그 이후 총2부가 되겠지요』 <박금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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