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주말마다 호화파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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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 노동당간부 등 권력층은 매 주말 김정일이 주최하는 파티에서 외제 위스키와 코냑등을 마시면서 경음악 밴드에 맞춰 춤을 추고한국의 대중가요를 부르는가하면 자주 불랙잭·마작 등 도박을 즐기는 등 초 호화판의 사치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교도(공동)통신이 곧 발간될 최은희-신상옥 부부의 북한납치수기를 인용, 11일 폭로했다. 최-신 부부는 8년 동안의 북한 납치생활을 적나라하게 폭로한『조국은 저 하늘 저 멀리에』 라는 제하의 수기에서 북한의 일반주민이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다른 세계에서 귀족생활을 즐기고 있는 김정일 등 북한권력층의 사생할을 신랄하게 비관했다.【동경=연합】
이 수기 중에서 김정일 사생활에 관한 내용을 발췌하면.
1978년1월 홍콩에서 북한의 대남 정보기관인 조사부의 부부장 임호균(현재 부장) 이 진두지휘한 북한공작원에 의해 북한에 납치된 나(최은희)를 위해 김정일는 매주 금요일 노동당본부에서 파티를 열어 영화나 뮤지컬 등을 구경시켜 주었다.
이 파티에는 김 이외에 그의 여동생 김경희부부, 당시 외교부장 허담부부, 노동당 조사부장 연락부장 등 당 고위간부와 장관급등 권력층 인물들이 단골손님으로 참석했다.
파티가 시작되기 전 그들은 2, 3시간동안 블랙잭이나 마작 등 도박을 즐기기도 했다.
파티가 시작되면 이들은 수입양주인 위스키와 코냑을 마시면서 7인조 경 음악밴드에 맞춰 트로트·디스코 춤을 춘다. 노래가 시작되면 그들은 밖에서의 김일성 찬가와 혁명노래 일색과 달리 『동백아가씨』등 한국의 대중가요를 즐겨 부른다.
김정일은 한국에서 유행되고 있는 대중가요의 곡명을 거의 알고 있었으며 특히 『하숙생』 『이별』『찔레꽃』 을 좋아했다.
김정일은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일은 없었다. 그는 밴드에 연주곡목을 지정한 뒤 도중에서 다른 곡을 연주하라고 명령하는 등 자주 곡목을 바꿔 밴드를 골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흥이 나면 직접 지휘봉을 쥐고 지휘를 하기도 했다.
한 파티에서 김정일도 참가한 블랙잭이 시작되었다. 나 (최) 는 북한 돈이 없어 구경만 하려고 했더니 누군가가 1백 원(노동자 1개월 봉급은 60∼70원) 을 건네주었다.
막판에 김정일과 한판승부를 벌였는데 김정일이 돈을 모두 잃자『돈은 내 통장에 달아놔』 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1978년 김정일의 생일인 2월16일 밤에 그의 집에 초대되었다.
그의 집 주변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고 경비초소가 있었다. 짐은 단층에 서양식이었다. 그 당시 7살난 그의 아들을 소개받았다.
김에게 『자식이 아들 하나뿐이냐』 고 물었더니『밑에 딸이 하나 있다』 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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