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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엄마, 오른쪽은 아빠 … 폐 나눠 죽어가는 딸 살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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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21일 오전 8시 서울아산병원 동관 3층 수술장(F로젯)에 수술방 3개의 문이 열렸다. 흉부외과 박승일 교수를 비롯해 마취과·호흡기내과·심장내과·감염내과 등 의사 30여 명과 수술 전문 간호사, 심폐기사 등 50여 명의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긴장할 틈도 없이 각자 역할을 수행했다. 오전 9시30분, 아버지·어머니의 폐 일부를 떼서 딸에게 이식하는 ‘2대 1 생체 폐 이식’이 시작됐다. 국내에서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이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 50명 투입 #2대1 생체 폐 이식 국내 첫 성공 #폐 생체이식은 현행법상 불법 #희귀 폐고혈압 딸 병세 악화되자 #부모가 탄원, 정부서 일시 허용 #복지부 “법 개정해 합법화할 것”

4번 수술방의 수술대에서 딸 오화진(20)씨의 망가진 양쪽 폐를 제거했다. 동시에 아버지 오승택(55)씨가 5번 방의 수술대에 올랐다. 오승택씨의 오른쪽 폐 아랫부분을, 옆방에선 어머니 김해영(49)씨의 왼쪽 폐 아랫부분을 뗐다. 이어 떼어낸 폐를 화진씨에게 이식했다. 8시간가량 걸렸다.

생체 폐 이식수술을 집도한 박승일 교수(왼쪽)와 수혜자 오화진씨 가족. [사진 서울아산병원]

생체 폐 이식수술을 집도한 박승일 교수(왼쪽)와 수혜자 오화진씨 가족. [사진 서울아산병원]

이달 6일 부모가 퇴원했고 중환자실의 화진씨도 인공호흡기를 뗐다. 화진씨는 첫걸음을 내디디며 “선생님, 숨이 안 차요”라고 말했다. 수술 성공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합병증·거부반응 등이 전혀 없다. 화진씨는 “수술 전에는 숨이 차서 세 발짝을 떼지 못했는데, 지금은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한다.

서울아산병원은 15일 “국내 최초로 생체 폐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국내 뇌사자의 폐를 이식받으려고 기다리는 300여 명의 말기 폐부전 환자가 생체 이식을 활용할 길이 열렸다. 국내 법에는 뇌사(腦死)자의 폐만 이식할 수 있다. 지난해 89명이 이식받았다.

화진씨는 2014년 갑자기 숨이 차고 체중이 불어나며 몸이 붓기 시작했다. 폐고혈압이라는 희귀병이었다. 폐동맥이 두꺼워지고, 폐동맥 압력이 올라 심장과 혈액을 주고받기가 어려워지는 질환이다. 심장도 망가져 급성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 환자는 지난해 7월 심장이 멈춘 적이 있고 재발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1년 생존 확률이 70% 미만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이번 수술로 기적 같이 살아났다.

이번 수술은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다. 장기이식법에는 신장·간·골수·췌장·췌도·소장 등 6개만 생체 이식을 할 수 있다. 뇌사자 이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화진씨의 병세가 날로 악화돼 지체할 수 없었다. 2014~2017년 7월 아산병원 환자 68명이 폐 이식을 기다리다 32명이 숨졌다. 폐 이식 대기 기간이 약 4년이나 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아버지는 딸이 이렇게 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았다. 오승택씨는 지난 8월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폐 전부를 줄 수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생체 폐 이식을 허락해달라”고 탄원서를 올렸다.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끊기도 했다. 아산병원도 긴급회의를 수차례 열어 수술 가능성을 타진했다.

정부가 움직였다. 보건복지부는 장기이식윤리위원회를 열어 수술을 사실상 허용했다. 권준욱 공공보건정책관은 “사후에 법령을 개정해 생체 이식 대상 장기에 폐를 포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폐 생체 이식은 미국·일본에서는 합법이다. 일본은 1998년 이후 매년 10건 이상 수술한다. 5년 생존율이 89%에 달한다. 화진씨 수술에 일본 교토대 의대 히로시 다테 교수를 비롯한 의사 2명이 참관하면서 수술을 도왔다. 수술을 집도한 박승일 교수는 “환자가 수술 전에는 복수가 차고 몸이 부어 있었고, 심장이 컸는데 지금은 이상 증세가 사라졌다”며 “폐 생체 이식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폐 생체 이식이 모든 환자에게 해당하는 게 아니며 ▶폐섬유증 ▶폐기종 ▶폐동맥고혈압 ▶미세 기관지가 막히는 질환 ▶소아 환자에게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폐암 환자는 이식 후 사용하는 면역억제제 때문에 암이 재발할 위험이 커 폐 이식 대상에 넣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김선영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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